책이름 : 일본 하이쿠 선집
지은이 : 마쓰오 바쇼 외
옮긴이 : 오석윤
펴낸곳 : 책세상
오랜 연못에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텀벙’
古池や蛙飛こむ水のみと
하이쿠(俳句)의 대표 작가 ‘마쓰오 바쇼’의 대표시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시 구절의 해설과 원문이다. 하이쿠 작가로서 선승인 시인의 ‘개구리가 뛰어드는 물소리로 인해 정적의 세계가 찰나적으로 깨졌다가 다시 원래의 정적으로 돌아가, 존재를 인식하는 선적인 깨달음을 추구한 시’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서 5-7-5의 운율을 지닌 정형시다. 내용은 변화하는 사계절을 소재로 자연,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 때로는 지나간 시간과의 교감을 표현한 서정시다. 시의 특징으로 계절을 상징하는 계절어(季節語)와 어느 한 단락에서 호흡을 끊어주는 기레시(切字)를 들 수 있다. 위 시에서 계절어는 개구리로 시절이 ‘봄’임을 나타낸다.
이 책의 구성은 특이하다. 본문에는 하이쿠의 근세 작가 마쓰오 바쇼의 작품 50편, 요사 부손의 작품 34편, 고바야시 잇사의 작품 36편과 근대작가인 마사오카 시키의 20편, 가와히가시 헤키고토의 7편 등 모두 147편의 하이쿠를 실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옮긴이가 인터뷰어가 되어, 이 책에 작품이 실린 시인들과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짧은 시’하이쿠에 대한 가상의 인터뷰를 펼친다. 그리고 다섯 작가의 작가연보가 말미를 장식한다. 시편을 읽다가 계절어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고바야시 잇사의 두 작품이 눈길을 끈다.
죽은 엄마여 / 바다를 볼 때마다 / 볼 때마다
맑게 갠 하늘 / 한낮에 혼자서 / 걸어가노라
‘하이쿠’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고바야시 잇사는 인생이 불행으로 점철되어, 36세라는 이른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가래가 끓는데 그 시절에는 ‘수세미 꽃 즙’이 치료약으로 쓰였는가 보다. 고바야시 잇사의 죽음을 앞둔 절필삼구(絶筆三句)가 애절하다.
수세미 피고 / 가래가 막아버려 / 죽은 자인가
가래가 한 되 /수세미 꽃의 즙도 / 소용이 없네
그저께 받을 / 수세미 꽃의 즙도 / 받지 못하고
‘단 한 줄의 시에 찰나와 우주를 담았다’고 평가받는 하이쿠는 현대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즈’는 하이쿠를 공모하고 있으며 일본의 하이쿠 결사(結社)는 무려 1,000여개나 된다고 한다. 나의 노트북 바탕화면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다운받은 이미지로 21세기 ‘마쓰오 바쇼의 오이노코부미 기행’의 북태평양 연안 풍경을 잡은 사진이다. 언제인가 시인 친구 함민복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이쿠 같은 짧은 시를 써야 겠다’고. 나는 그 말을 ‘지나치게 산문화된 오늘날의 시를 경계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문학상 작품집 두 권 - 2 (0) | 2012.01.09 |
---|---|
절하고 싶다 (0) | 2012.01.05 |
보이지 않는 도시들 (0) | 2011.12.14 |
꽃봇대 (0) | 2011.12.12 |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0) | 201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