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꽃봇대
글쓴이 : 함민복
그린이 : 황중환
펴낸곳 : 대상
‘○ ○ ○ 兄께 / 빨리 완쾌하시길 / 좋은 글 쓰시길 / 2005. 1. 31 / 함민복 드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 ‘말랑말랑한 힘’의 자필서명이다. 그렇다. 그때 나는 왼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김포의 한 정형외과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고맙게도 시인은 막 출간된 시집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꼭 7년 만에 출간된 것이다. 시인은 7년 동안 두 권의 산문집 ‘미안한 마음’과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그리고 동시집인 ‘바닷물 에고, 짜다’를 상자했다. 시인의 시에 애착을 가진 독자들은 조갈이 날 정도의 긴 시간이었다. 책은 바다를 건너 택배로 내 손에 전해졌다. ○ ○ ○ 님께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2011. 11. 24 / 함민복 드림. 이 책은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인’과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카투니스트’가 만난 시화집이다. 카툰집에는 화가 황중환의 그림이 곁들여진 시인의 신작시 66편이 실렸다. 4장으로 구성된 시화집 3장 ‘하늘’편에는 연작시 ‘다리의 사랑’ 11편이 실려 있다. 여기서 다리는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연결시키는 초지대교를 말한다. 시인의 인삼가게 ‘길상이네’가 세들은 '초지인삼센터‘ 은 초지대교 입구에 있다. ’작가의 말‘에도 나오듯 시인은 대교를 밑에서 쳐다보는 황산도의 방부목으로 지은 나무길 간이정자에서 시를 쓰고 원고를 다듬었다. 시인을 점심 때 만나면 정자주변 산채비빔밥집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내가 알기로 시인은 밥을 비벼 먹기를 좋아한다.
나는 볼음도에 출장가면 어김없이 들르는 집이 있다. 토종약초 향토전문가로 ‘바닷물 에고, 짜다’에 등장하는 만수 형님이다. 부엌 선반에 시인이 보내 준 새 책이 놓여있다. 대문을 나서는 내게 형이 담근 술 두통을 내민다. 으잉! 자양강장제의 제왕 하수오다. 야! 블로그에 형님의 약초 분별력을 자랑했더니, 이런 것을 보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것인가. 한통은 당연히 내 것이고, 한 통은 시인에게 전해 주라는 형님의 지엄하신 명령이다. 그 비싸다는 하수오가 투명한 플라스틱 담금 술통에 소주보다 더 많이 담겼다. 참 ! 통도 큰 형님이시다. 배 시간에 늦겠다. 나는 서둘러 선창으로 내달렸다. 본도에 나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장을 보시던 아는 형(시인도 강화도 나들길 일로 인연을 맺은 분)이 돌연 돌아가셨다. 말그대로 자다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미망인이 하염없이 손을 잡고 넋두리를 한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후회가 밀려온다. 본도에 자주 나와 술잔이라도 기울였어야 하는 것인데. 돌아가신 이장 형은 술이 거나해지면 아무 때나 내게 손전화를 넣으셨다. 눈물이 비친다. 나는 초지대교로 내달렸다. 한꺼번에 책 두 권을 내놓은 시인은 서울 출타 중이었다. 인터뷰로 바쁘다. 나는 뿌듯한 기분으로 ‘하수오 담금술’을 시인의 아내에게 내밀었다. ‘남편은 술 끊으셨는데요’ 나를 잘 알기에 하는 소리다. 얼씨구나! 하고 나는 섬으로 되가져올 수가 없었다. ‘아! 참 이거는 술이 아니라, 볼음도 만수 형의 정성이예요’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시인의 아내가 또 다른 책 ‘절하고 싶다’를 내 손에 건넸다. 바쁜 시인은 서명도 못하고 아침 일찍 서울에 올라갔단다. 하긴 시인은 대중교통 마니아다.
다음날 섬에 들어가는 시간에 쫒겨 허둥거리는데, 시인한테서 손전화가 왔다. 집이란다. 강화읍에서 길상 장흥리로 내달렸다. 시인의 결혼이후 처음이다. 신혼집에 아무 때나 들이닥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인의 집에는 ‘꽃봇대’를 펴낸 대상출판사 사장이 와 있었다. 사장은 시인과 동갑내기로 친구였다. 명함을 건네준다. 정자선. 에세이 ‘절하고 싶다’에 서명하는 시인의 얼굴이 불콰했다. 나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다. "아니, 벌써 ‘하수오주’ 해친 것 아냐." 나는 배 시간에 쫒겨 서둘러 시인의 집을 나섰다. 시인은 내년 여름에 시집과 동시집을 동시에 낼 예정이다. 신난다. 장가를 가더니 이번 시화집에 사랑을 노래한 시가 곧잘 눈에 뜨인다. 새 시집의 사랑타령이 기대된다. 시인이 워낙 선하고 여린 사람이라는 것은 표제시 '꽃봇대'에 잘 드러나 있다.
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저 전봇대와 전깃줄에/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 올렸으면/꽃향기, 꽃빛, 나비 날개짖, 벌 소리/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
그나저나 ‘하수오 酒’는 어느만큼 묵혔다가 개봉해야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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