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지은이 : 천규석
펴낸곳 : 실천문학사
요즘은 겨울철이라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 배시간이 늦추어지고 앞당겨졌다. 섬 앞바다에 정박한 여객선은 아침 7시 30분에 출항한다. 1시간 40여분 소요되는 도선 시간. 다시 강화도 외포리에서 9시 30분에 출항하여 주문도에 닿으면 11시가 넘어선다. 오후 1시 30분에 주문도를 뜨고, 3시 30분 외포리를 떠나면 5시가 넘어서야 주문도에 닿는다. 얼음같이 찬물에 발을 담그고, 시베리아를 건너 온 칼바람에 온몸이 얼어붙은 삼보 12호가 이제야 고단한 몸을 푸는 시간이다. 차량 42대와 승객 400여명이 탈 수 있는 393T의 큰 덩치를 자랑하는 카페리호이지만 겨울 한철이 몸이 가장 가벼운 계절이다. 섬주민들은 주말에 친인척이나 이웃의 결혼식이 있어야 뭍에 나가기 때문이다. 평일 적재된 차량은 고작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전기 판넬이 깔린 객실의 승객도 마찬가지다. 낙도주민을 위한 시 보조금이 없으면 배 운항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나마 피서철 성수기 보름동안 섬을 찾는 도시인들로 인해 여객선은 제 덩치 값을 한다. 과도한 재화와 서비스에 둘러쌓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섬에 닿자마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선창에 내리면 눈에 뜨이는 식당이 단 한곳이다. 하지만 이 식당을 이용하려면 며칠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섬을 찾은 외지인들의 손에는 곧 쓰레기로 화할 물품들로 양손 가득하다. 섬이라지만 그 흔한 횟집 한곳 없다. 배로 잡거나, 그물에 걸린 활어들은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카페리호에 실려 외포리 항으로 운송된다. 피서객들은 민박집이나 해변의 텐트에서 직접 조리를 하거나, 민박집 가정식을 사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섬 곳곳에 쓰레기만 잔뜩 부려놓고 섬을 떠난다. 정부는 예산을 들여 중장비와 대형트럭으로 섬의 쓰레기를 뭍으로 나른다. 카드 체크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섬 안에 두 군데다. 여객선 매표소와 농협 하나로마트다. 하지만 섬의 마트는 도시 변두리의 슈퍼보다 덩치가 작다. 농협은 5일 근무제라 토,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 눈에 가득 들어오는 것은 녹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은 들녘 뿐이다. 당구장, 다방, 노래방, 술집, 25시 편의점, PC방, 약국 등등 단 하나도 없다. 피서객들은 혀를 내밀며 편의시설하나 없는 불편에 서둘러 섬을 빠져 나간다. 초·중·고교가 한 울타리 안에 몽켜 있는데 30여명의 학생보다 선생이 더 많다. 젊은이는 없고 무한경쟁 사회에서 경쟁력(?) 없는 노인네만 득시글거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도시라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노인들이 섬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사실이다. 풍족한 섬 생태계가 노인들을 부양하고 있다. 땅 한 평 없이 고희를 넘기신 노인부부가 거뜬하게 생계를 유지한다. 할머니는 취로사업에 나가거나 조개나 소라를 줍는다. 할아버지는 낚시로 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굴을 쫀다. 주민수 350여명에 논은 30만평이나 된다. 그리고 토배기들이 농을 하듯이 드넓은 수족관이 섬을 에워싸,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다. 면소재지 주문도의 실정이다. 유인도인 나머지 3개 섬 볼음도, 아차도, 말도도 큰 차이가 없다. 저자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꿈꾸는 ‘시장에 안가는 자급소농공동체’가 그대로 구현되었다. 이 책은 급진적인 근본주의자, 극단적 환경론자인 저자가 민중무역, 윤리적 소비, 착한 여행 등이 공정무역으로 변주되는 위선적 현실에 매서운 회초리를 든 것이다. 그러기에 ‘최선의 소비는 자급자족소비’인 것이다. 지자체마다 ‘절임배추’를 상품화하는데 혈안이 된 요즘, 텃밭에 가꾼 배추와 무, 파, 생강, 바다에서 건진 새우젓으로 섬마을은 품앗이로 김장을 다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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