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두 권 - 2

대빈창 2012. 1. 9. 05:29

 

 

책이름 : 아침의 문 / 맨발로 글목을 돌다

지은이 : 박민규외 / 공지영외

펴낸곳 : 문학사상

 

근 열흘간 나는 한국단편 소설들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박민규 - 2, 공지영 - 2, 전성태 - 2, 배수아 - 1, 윤성희 - 1, 김중혁 - 1, 편혜영 - 1, 손홍규 - 1, 김애란 -1, 정지아 - 1, 김경욱 - 1, 김숨 - 1, 김언수 - 1, 김태용 - 1, 황정은 - 1. 모두 18편이다. 내가 읽은 요즘 문단에서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편수이다. 위 작품들은 작년과 재작년 제 34회와 35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다. 근래 작품집은 대상수상작과 수상작가의 자선대표작을 싣고, 우수상 수상작 7편으로 책을 꾸민다. 그리고 수상소감과 문학적 자서전을 덧붙이고, 대상작의 작품론과 작가론을 곁들인다.

내 책장 한 칸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차지하고 있다. ‘93년 제 17회 대상작은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였다. 그러니깐 작품집 19권이 순서대로 꽂혀있다. 이 땅의 수많은 문학수상작 중 내가 유일하게 제 1회부터 빼놓지 않고 현재까지 읽은 작품집이다. 제 1회가 ’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 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나는 연초에 ’신춘문예당선작품집‘을 잡았고, 한 여름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연초에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 세월동안 작품집에 수록되는 작품들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기수상작가의 작품 한편을 실었다. 그리고 원로작가를 우대한다는 취지에서 특별상 수상작을 새로 만들지만 두 해로 단명했다. 2003년도와 2004년도의 전상국의 ’플라나리아‘와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가 수상작이다. 내 기억으로 가장 파격적인 수상작은 2004년도의 김훈의 ’화장‘이다. 그때만 해도 대상 작가는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발표작품이 없었다. ’화장‘은 작가 최초의 중·단편소설로 기억된다. 그러기에 작품집에는 대상작가의 자선대표작이 실렸지만, 다른 중·단편 작품이 없는 대상작가는 에세이 3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제34회 수상작 ‘아침의 문’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고, 제35회 수상작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역사와 현실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그것을 견디는 개인의 고통을 대비’시킨 작품이다. 여기서 ‘글목’은 ‘글이 모퉁이를 도는 길목’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새로 지어냈다. 아무튼 내 개인적으로 수상작가와 작품이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가리타니 고진’이 말한 ‘근대문학의 종언’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문학이 '향유하는 대상이 아닌, 이상을 추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들어 이념은 죽었다고 선포하며 종잇장보다도 가벼운 개인의 일상속으로 문학이 침잠되었을 때, 주류들은 80년대를 회고하는 문학을 ’후일담 문학‘이라며 폄훼했다. 그런데 작년 대상작가 공지영은 '후일담 문학'이라는 용어를 있게 한 대표작가였다. 작품속의 이 구절이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선의를 가진 그들만이 자신에 대한 진정한 긍지로 운명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24쪽)‘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매년 초 어김없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이상문학상 작품집 읽기는 오늘로 끝내야겠다. 얼치기 생태주의자로서 도시적 삶을 그린 작품들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소설 읽기의 ‘하방연대(下方連帶)’라고 우겨야겠다. 故 이문구 선생이 돌아가신 후 나는 큰 허방에 빠진 느낌이었다. 시야가 좁은 나는 농촌·농민소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땅의 초창기 근대문학에서 아쉬움을 달래야하나 주춤거리는데 두 작가가 벽력처럼 눈에 들어왔다. 이시백과 최용탁이다. 곧 신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될 때다. 생각 같아서는 정지아, 공선옥, 전성태 중에서 수상작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젊은 날 문학적 허기와 허영을 메꾸어주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이여, 굿바이.

 

p.s 문학사상은 신년 1월 6일,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를 선정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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