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생각의 좌표
지은이 : 홍세화
펴낸곳 : 한겨레출판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192쪽)”일흔 살을 앞두고 권총 자살하면서 남긴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프리모 레비는 24살때부터 이탈리아 빨치산 활동으로 파시즘에 대항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다양한 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생을 놓아 버렸다.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무엇이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을까. 독재자의 폭력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는 한때 마르크스의 고전적 명제인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야근까지 고달픈 공장노동에 시달리던 시절, 자기위안으로 삼으면서 미래의 변혁을 꿈꾸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솔직히 비관적이다. MB정권을 파시즘으로 규정하기 뭐하지만, ‘속물적 도적 정권’이라고 그 행태를 지적할 수 있다. 즉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은 이제 대놓고 국가기구를 탐욕적인 사욕을 추구하는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MB정권은 ‘사익에 대한 동물적 예민함과 그것을 얻고 지켜내기 위한 뛰어난 도구적 성찰성,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윤리적 반성 결여, 인간에 대한 예의 무시, 그리고 그에 따른 지독한 뻔뻔스러움’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돈이라면 도덕과 윤리까지 폐기처분한 실용정부와 한나라당을 이 땅의 사람들 중 30%는 고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막말로 ‘생각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군상들이다. 용산 참사 사건, 평택 쌍용자동차, 이랜드 파업 아줌마들, 한진중공업 크레인과 희망버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여성노동자 등. 이 사건 당사자들의 가족들은 솔직히 선거에서 어느 당에 표를 던졌을까. 그런데 한나라당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빨갱이라고 불온시했던 진보정당만 투쟁현장을 찾아와 위로한다. 바로 ‘존재에 대한 의식의 배반’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같은 동족이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 행태를 보면 ‘사람들이 늙은 것인지, 사회가 지친 것'인지 도통 분간이 안된다. 농약을 마실 수밖에 없는 억울한 농민의 죽음이나 비정규직의 피눈물나는 절규에 눈 한번 깜박하지 않는다. 심지어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라거나, 한진중공업 크레인의 김진숙에게 나라 팔아먹을 년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더 나아가 자칭 ‘어버이’라는 노인네들은 설렁탕 한 그릇 얻어먹고, 탑골공원을 벗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패악질로 애국심을 발휘한다.
이 땅 사람들의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제일 큰 원인은 ‘미친 교육’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자기생각과 논리가 없는 사회구성원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권력과 족벌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악한 사익추구 집단인 ‘조중동’을 보는 사람이 구독자 중 70%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이 땅은 마르크스의 고전적 명제가 기득권 세력에게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사회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드리야르가 말했던가. 우리가 부르는 현실은 이미 '권력과 매체가 연출로 구성되는 거대한 허구‘라고. 곧 감옥이다. 그런데 ’이 감옥에 하나의 창이 있다. 이 창은 세계와 만나게 해준다. 바로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다.(24쪽)' 특히 '한국처럼 제도교욱이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이 요구한 것만으로 채우게 된다.(25쪽)' 자유주의자들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선명한 진보의 기치를 내건 '진보신당'의 대표로 저자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나는 불안하다. 이 땅의 정당법에 의하면 총선에서 득표율 2% 지지를 못 얻으면 진보신당은 자진해산해야 한다. 내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은 3% 지지를 못얻어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꾸렸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김진숙의 '소금꽃나무'와 함께 나의 뇌리를 가장 뜨겁게 만든 책이었다.(*MB정권 정체성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기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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