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한국의 누와 정
지은이 : 허균
찍은이 : 이갑철
펴낸곳 : 다른세상
계곡·계류가의 정자 수 19, 강호·해안가의 정자 수 6, 별서 정원의 정자 수 11, 궁궐의 정자 수 7, 사찰·서원의 정자 수 3, 향리·관아의 정자 수 5, 모두 51군데의 정자가 등장하는 이 책은 2002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간행한 ‘한국의 정원 - 선비가 거닐던 세계’와 쌍둥이 책이다. 즉 1책 2권으로서 ‘한국의 정원’이 1권이라면, ‘한국의 누와 정’은 2권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청명한 달밤, 안개 낀 아침이나 눈비 오는 날에 누정에 올라 옛 풍류객의 마음자리를 찾아 기록'하였다면 사진작가 이갑철은 ‘누정에 오르면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와 고아한 달빛'을 앵글에 담아냈다. 선비들이 자연과 만나 마음을 다스리던 공간으로서 정(亭)은 자연 속에 지어진 간소한 구조의 목조 건물을 이르고, 누(樓)는 이층구조로 된 건물, 온돌방이나 사랑채 기능이 더해지면 당(堂)이나 각(閣)이라 부른다.
고즈넉한 산수풍경 속에 앉은 단아한 누정을 떠올리면 우리는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해진다. 책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경남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군(群)을 나는 오래전에 둘러보았다. 덕유산 자락에서 유기농으로 오미자 농사를 짖는 후배 덕이었다.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그리고 농월정. 하지만 천 평 너럭바위를 안마당으로 삼은 농월정은 한줌 재로 변했다. 2003년 10월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정면 세칸, 측면 세칸 규모로 뒤쪽 중앙에 방 한칸을 들인 누각 형태의 건물이었던 농월정은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문화재 보존 정책을 말해 무엇하랴. 저자는 ‘건물 자체가 훼손되지 않았다 해도 주변 경관이 훼손되면 그에 따라 정자의 가치와 존재의미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천박한 미적 감각은 손만 대면 가치를 훼손시킨다. 경북 안동의 체화정은 2006년 문화권개발정비사업으로 오히려 망신창이가 되었다. 연못 바닥 준설과 석축공사는 자생 수변식물의 자취를 감추게 만들어, 외래종 잡초만 무성한 거대한 인공수로로 탈바꿈시켰다. 경복궁 향원정은 문민정부 시절 연못정화라는 미명아래 연꽃을 모두 뽑아버렸다. 불교의 연꽃이 궁궐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특정 종교인들의 기가 막힌 신심 때문이었다.
표지 그림은 계곡에 자리한 정자 중 산수풍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전북 장수의 용연정이다. 나의 발길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은 청암정과 자미탄 계곡의 정자군(群)이다. 청암정은 경북 봉화의 닭실 마을의 충재 권벌의 유적지로 거북이를 닮았다는 거대한 푸른 바위위에 지은 정자다. 경남 함양의 화림동 계곡과 쌍벽을 이루는 전남 담양의 자미탄 계류에는 소쇄원, 명옥헌, 식영정 등이 군집해 있다. 우리나라의 4대 계곡은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 한라산 탐라 계곡, 가야산 홍류동 계곡. 조선 시대의 3대 가인(歌人)은 윤선도, 정철, 박인로. 조선 시대의 5대 누각은 충주 한벽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남한 광한루, 삼척 죽서루. 가든(garden)은 ‘감상할 만한 경치가 드문 지역에서 인공적으로 꾸민 정원'을 말하고, 우리나라의 산수정원은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자연경관 자체에 인문적 의미를 부여했다. 책을 읽어나가다 느낀 소소한 재미였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송강 정철에 대해 ’당시의 최고 문사로서 인의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시비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남의 비방과 화를 피하지 못했다‘고 평한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철은 정여립 모반 사건인 기축옥사를 일으켜 조선 최악의 피비린내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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