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지은이 : 최성각
펴낸곳 : 동녘
해묵은 책을 집어 들었다. 책등의 부피로 봐서 쪽수가 꽤나 묵직할 것 같았는데 막상 펼쳐보니, 450여 쪽 안팎이다. 여느 책의 700여 쪽 부피였다. 재생종이로 만든 책이었다. 좋아하는 소설가 김성동의 표사가 실렸다. 반갑다. 정기구독하는 『녹색평론』의 연재글로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저자가 존경하는 분의 표사로 보기좋다. 표지 이미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인다. 사진을 찍은이는 화가 정상명이다. 분명 춘천 퇴골의 풀꽃평화연구소 마당이다.
저자가 이끼 낀 고목 둥치에 등을 기대고 편한 차림과 자세로 새책을 이제 막 펼쳤다. 신록이 무성한 것으로 보아 한여름이다. 개집 모서리가 보이고 삽살개 잡종으로 보이는 개가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추었다. 놀란 표정이다. 개이름이 가물가물하다. 풀평연 식구가 올린 웹진에 분명 저 개가 등장했다.책은 서평모음집이다. 하지만 보통의 서평집과는 내용이 판이하다. 그것은 책에 대한 얘기가 아닌, ‘이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장된 사회비평집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쓸쓸한 젊은 날, 책으로 겨우 버텼다’에는 저자의 젊은 날 나침반 역할을 했던 책 12꼭지로 이루어졌다. 땅을 사고파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을 일러준 ‘대천덕’ 신부와 인류보다 좀 더 진화한 ‘체 게바라’ 그리고‘자유이면서도 부르조아적이거나 리버럴하지 않은 사회, 번영은 하지만 경제에 지배되지 않는 사회, 공동체적이긴 하지만 마르크스적 집단주의와는 인연이 없는 사회’를 꿈꾸었던 칼 폴라니 가문 등이 등장한다.
2부 ‘시대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분노에 대한 글 17꼭지가 실렸다. 광적인 독재자가 위대한 종교개혁가로 분장된 ‘칼빈’과 무농약 사과의 기무라 아키도, 인도의 불가촉천민 해방운동가 암베드카르, 베이징 대학의 부총장 故 지셰린, 가난한 시골교회의 종지기 동화작가 故 권정생 선생 등이 나온다.
3부 ‘우리에겐 바로잡을 시간밖에 없다’는 저자의 본령으로 환경·생태에 관한 꼭지 17개 이야기가 나온다. 지독한 실천가 스콧 니어링, 일본의 시민과학자 故 다카기 진자부로, 오래된 미래의 고향 라다크, 생태여성학자 문순홍과 생태시인 이문재,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작은 야쿠 섬의 故 야마오 산세이가 얼굴을 내보였다. 그리고 부록으로 ‘우리 시대의 환경책 목록’으로 환경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에 대한 소개 글이 실렸다.
36꼭지의 표제로 실린 책만 해도 100여권이 넘었다. 물론 글중에 언급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나는 책을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풀평연〉의 웹진 ‘최성각의 독서잡설’에서 보아왔던 글이다. 나는 저자를 『잠자는 불』이라는 신춘문예 소설당선작을 통해 알게 되었다. 25년 전이었다. 중편소설은 배경이 탄광촌이었다.
세월이 흘러 4년 전 우연히 옛일을 회고하다,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달려라 냇물아 』를 만났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환경운동가에 방점을 찍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학판은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고, 거짓을 일삼는 재벌언론, 언론재벌과 긴밀하게 야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엉터리 문학보다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체들이 자연세계에서 장기적으로 선택받지 못할 것’이며, '지구라는 이 서식지를 다른 생물종에게 물려줄 준비'(375쪽)를 하는 인간에 대한 우려로 오늘도 환경판에서 불철주야 애를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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