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갈대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지은이 : 유영갑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나는 현재 강화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살고 있다. 본도를 하루 두 번 왕복하는 카페리호로 그것도 시간 반이나 걸려 닿을 수 있는 외딴섬이다. 나는 강화도와 염하라는 폭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작은 반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화도가 고향이시다. 우리나라 3대관음도량으로 유명한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다. 아들 둘을 둔 아버지는 섬의 문전옥답을 팔아, 좀 더 넓은 땅을 경작할 욕심으로 김포에 터를 잡으셨다. 그리고 셋째로 내가 태어나고, 막내로 딸을 보아 3남1녀를 두셨다. 이런 연유로 나는 어릴적부터 강화도를 자주 오갔다. 명절 연휴나, 조부 성묘 때마다 년 중 너댓번은 강화도에 발길이 닿았다. 서른 중반, 시골로 낙향한 나의 직장은 강화였다. 김포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주문도로 6년 전에 들어왔다. 아버지를 여의고, 김포에 홀로 계시던 어머니를 3년 전에 섬으로 모셨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50여 년 만의 '강화도의 회군' 이었다. 그것도 더욱 외진 곳으로. 어머니의 고향 석모도는 이제 뭍과 다리로 연결될 날이 멀지 않았다. 섬으로서 운명을 다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섬 주문도는 강화도에서 보면 석모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 창으로 석모도의 보문사가 정면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나는 이 책을 잡으면서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인 친구와 인연을 쌓으면서도, 강화도가 태생인 저자의 책을 이제야 뒤늦게 잡았기 때문이다. 책날개를 펼치다 눈이 번쩍 뜨인다. 탄광노동자 ‘성완희 열사’의 전기를 썼다. 그리고 책을 펴낸 출판사도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진보적 문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삶이 보이는 창’이다. 이 책은 10년 전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강화도에 터를 잡은 작가가 낡은 필름카메라에 담은 강화도 이야기다. 글은 모두 25개의 꼭지에 강화도의 문화유적과 자연풍광, 그리고 강화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 표제는 ‘깨달음을 향해 쉼 없이 정진하는 납자(衲子)들. 흔들리는 갈대에 눈이 쌓이지 않듯 그들 마음의 거울에 때가 낄 틈이 없을 것이다. 닦고 닦아서 얼음처럼 깨끗해진 거울.(61쪽)’에서 따왔다.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자가 이름붙인 외각산 자락에 있는 작가의 집을 나는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외포리에서 면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서면 강화도에서 제일 넓은 내가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수지를 둘러싼 들녘에 산줄기 하나가 물가까지 뻗쳤다. 그 끝머리 어디쯤일 것 같다. 혈육이 그리웠던 아이가 혼자 걷던 ‘외포리 가는 길’과 늦은 봄 선생님에게 억지로 끌려가 돌멩이로 때를 문질렀던 저수지 ‘농도원’의 추억이 눈에 아슴아슴하다. 나는 직장 동료와 몇 번 농도원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했다. 그때만 해도 여름밤 저수지 주변은 반딧불이가 지천이었다. 하긴 낚시보다 찬이슬을 맞아가며 마시는 소주가 그럴 듯 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빛바랜 추억일 뿐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농도원저수지는 없어졌다. 1998년 그해 여름. 강화도의 하루 강수량이 619mm 였다. 산이란 산의 정상은 산사태로 모두 스키플로어 몰골로 변했다. 계곡에서 쏟아붓는 물폭탄을 견디고 못하고 농두원 저수지 뚝이 쓸려 나갔다. 그 터에 지금은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들어섰다. 개발이란 추억의 공간을 깡그리 밀어 붙이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서 나는 한참동안 고향 석모도를 가려면 지나치던 ‘외포리 가는 길’ 위의 어릴 적 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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