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꿀잠
지은이 : 송경동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거리의 시인, 노동자 시인, 박노해와 백무산을 잇는 시인’이라 불리는 송경동 시인의 첫 시집이다. 나는 시인의 시집을 역순으로 잡았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먼저 잡고, 첫 시집을 이제야 잡았다. 그것도 시집이 개정판을 펴내면서 겉표지가 바뀐 것을 보고, 서둘러 책장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출판사가 ‘삶이 보이는 창’이다. 나의 요즘 책읽기는 ‘적·녹 연대(?)’의 길을 가고 있다. 얼치기 생태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녹색평론사가 펴낸 책과 근래 들어 부쩍 ‘삶창’의 책을 즐겨 손에 잡고 있다. 시인이 기획한 용산참사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를 필두로 이시백과 최용탁의 소설 그리고 오도엽의 ‘밥과 장미’까지. ‘삶창’은 1998년 구로지역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문인들이 공동체 문화 복원을 꿈꾸며 세운 출판사다. 시인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농성 때 희망버스를 4차례 기획했다는 죄(!)로 수감 되었다. 시인의 첫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 간다’가 막 출간되었다. 당연히 성질 급한 나는 부리나케 주문했다. 시집은 5부로 구성되었고, 모두 64편의 시와 김해자 시인의 발문이 실렸다.
전남 여천군 쌍봉면 주삼리 끝자락/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 가면 지금도/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 있으리
이삼십 분 눈 붙임이지만 그 맛/간밤 갈대밭 우그러뜨리던 그 짓보다 찰져/신문쪼가리 석면쪼가리/깔기도 전에 몰려들던 몽환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꿈자락 붙들고 늘어지다가도/소혀처럼 따가운 햇살 날름 이마를 훑으면/비실비실 눈감은 채로/남은 그늘 찾아 옮기던 순한 행렬
표제작 ‘꿀잠(54쪽)’의 전문이다. 나의 가장 감미로웠던 꿀잠은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땅의 진보세력은 그해 처음으로 합법공간의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민중당 간판을 내걸고 총선에 나섰다. 처참한 패배였다. 3%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진보진영은 정당법에 의해 당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대선이 다가왔다. 온몸이 성치 않은 패잔병 몰골로 선거를 준비해야만 했다. 백기완 선생이 무소속 민중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기호 8번의 상징은 ‘장산곶매’였다. 선거자금이 턱없이 모자랐다. 활동가들은 결혼반지마저 뺐다. 노동자와 농민과 도시빈민의 쌈짓돈이 모아졌다. 나는 구로지역 동지들과 노가다 현장 일에 나섰다. 노원구 상계동 백화점 신축 공사현장이었다. 9월 오픈을 미디어에 광고했는데, 공사는 지지부진 했다. 난생처음 노가다 야근을 했다. 시간에 쫒긴 시공사 측은 밤일 일당을 곱으로 지급했다. 욕심이 생겼다. 우리 일행은 하루밤마다 만원에 계약한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 현장에는 조선족 동포들도 많았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하루 일당이 3만원이었다. ‘노가다는 서있기만 해도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점심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먹고 그늘을 찾아, 벽돌을 베개삼아 눈을 붙였다. 그 한달 보름 간의 노루잠은 나의 삶에 있어 가장 달콤했던 꿀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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