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東豆川
지은이 : 김명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몇 년 전 시인 친구 함민복은 안양예고에서 시 창작을 가르쳤다. 그때 문재(文才)가 특출했던 여제자가 대학 선택을 고민할 때 시인은 고려대 문예창작과를 추천했다고 한다. 시인 김명인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시인 친구가 ‘시인으로서 존경하는구나.’하고 나는 귓전으로 흘려 들었다. 작년 20여권의 시집을 구입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 나는 이 시집을 가트에 넣었다. 그리고 해를 묵히고 이제야 시집을 펼쳤다. 아뿔사! 내가 생각하고 있던 시인이 아니었다. 그랬다. 나의 뇌세포에 입력된 김명인은 문학평론가였다. 나는‘87년에 발표된 민중적 민족문학의 이론적, 실천적 지평을 열어젖힌 그 유명한 평론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시도 쓰고, 평론도 쓰는구나. 하고 제멋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 시집은 시인 김명인의 처녀시집으로 초판 1쇄가 1979년에 발행되었다. 내가 구입한 시집은 꼭 30년 만에 14쇄를 찍어냈다. 시집은 5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켄터키의 집’은 연작시 ‘켄터키의 집’, ‘베트남’ 각 2편 등 9편. 2부 ‘東豆川’에는 연작시 9편. 3부 ‘高山行’은 연작시 ‘고래’ 2편 등 11편. 4부 ‘嶺東行脚’은 연작시 8편 포함 9편. 5부 ‘復活’은 13편. 모두 50편의 시와 문학평론가 김치수의 해설이 말미를 장식했다. 시에는 신산스런 가난과 약소민족의 설움이 잘 그려졌다.‘송천동’과 ‘켄터키의 집’의 고아원. 시인의 고향마을 백석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베트남’과 ‘동두천’에서의 약한 나라 국민으로서의 서러움. 광부와 어부들의 고통스런 삶이 시를 읽어나가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태어나서 죄가 된 고아들과/우리들이 악쓰며 매질했던 보산리 포주집 아들들이/의자를 던지며 패싸움을 벌이고(東豆川 Ⅱ, 2연 中에서)
우리들이 가르치던 여학생들은 더러 몸을 버려 학교를 그만두었고/소문이 나자 남학생들도 덩달아 퇴학을 맞아/지원병이 되어 군대를 갔지만(東豆川 Ⅲ, 4연 中에서)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동두천 Ⅳ, 1연 中에서)
나는 동두천 연작을 읽으면서 천승세의 ’黃狗의 悲鳴‘과 남정현의 ’糞地‘를 떠올렸다. 시인이 ’동두천‘ 연작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인 70년대 중반 나는 까까머리 학생이었다. 나는 방학 때마다 동두천에 발걸음을 했다. 동두천은 시 자체가 주한미군기지였다. 그때 동두천은 읍이었다. 나는 고모가 세 분 계셨는데 그중 큰고모가 동두천에 사셨다. 큰고모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나보다. 큰고모는 아들과 딸을 두었다. 딸은 어릴 적에 둘째고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갔다. 막내고모는 아들 둘을 두었다. 막내고모부는 수영으로 한강을 도강하다 죽었다고 한다. 과부가 된 막내고모는 둘째를 부잣집에 입양시키고, 첫째만 거두었는데 그것도 시원치 않았다. 고종사촌인 첫째는 나보다 한 살 밑이었다. 그는 강화 왕이모할머니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컸다. 고교는 교장 댁 농장의 돼지를 돌보면서 어렵사리 졸업했다. 외삼촌댁이라고 자주 김포 우리 집에 들렀는데, 가난했던 우리 식구들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나는 왜 그리 사촌을 못살게 굴었는지. 그 나이 특유의 위악적인 행동이었지만,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에게 용서를 빌 수조차 없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강화에서 농장 상머슴으로 일하던 그에게서 결혼소식이 날라 왔다. 아! 이제야 그의 삶에도 꽃이 피는구나! 그는 가을 결혼을 앞두고 동두천 큰이모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런데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갔다가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고종사촌 형도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이 군 제대를 한 해 한탄강에서 익사했다. 한탄강은 고모네 집안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동두천 얘기를 하다 딴 길로 샜다. 고생만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고종사촌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시기를. 동두천에 대한 진짜 얘기는 존경하는 작가 ’남정현‘의 ’糞地‘를 다루면서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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