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고향은 있다

대빈창 2012. 2. 29. 03:21

 

 

책이름 : 고향은 있다

지은이 : 유승도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앞표지와 뒷표지 이미지가 똑같다. 정갈하고 산뜻하다. 한밤중으로 보인다.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있다. 전나무로 보이는 키 큰 아홉 그루의 나무 사이에 집 한 채가 보인다. 그리고 집 양옆의 두 나무 꼭대기에 새가 한 마리씩 앉아있다. 개집도 보이고, 개 두 마리가 뛰어놀고 있다. 자동차도 한대 보인다. 유실수로 짐작되는 활엽수 한 그루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높다란 나무에 사다리가 걸쳐있다. 책씻이를 하니 표지 그림이 이해된다. 달이 아니라, 해로 보아야 한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을 나타내기 위해 새 두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이다. 걸쳐진 사다리의 나무는 분명 소나무다. 시인은 토종벌을 치는데, 분봉하는 벌들이 높은 소나무 가지에 달라붙어, 시인은 죽음을 무릎쓰고 나무에 올라가 벌을 따 내렸다. 이미지 바탕이 온통 초록인 것을 보고 나는 밤중을 연상했는데, 온 천지가 신록으로 우거진 시인이 사는 산골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옳다.

이 책은 운 좋게 나의 손에 들어왔다. 우연히 산골시인을 검색하다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산골시인 유승도. 이 산문집은 2007년 12월에 랜덤하우스에서 시집 ‘차가운 웃음’과 동시 출간되었다. 산문집과 시집 모두 두 번째로 시집은 1999년에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가 처녀시집이고, 2002년‘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이 첫 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은 최근 세 번째 산문집 ‘수염 기르기’를 펴냈다. 강원 영월 김삿갓면 망경대산 중턱 해발고도 700m에서 토종벌을 치며, 아내와 외아들과 더불어 자급자족하는 시인. 시인은 산골에서 살모사, 까치독사, 두꺼비와 부딪히고, 흑염소와 닭과 개를 키우며, 고추, 두릅, 배추 농사를 짓는다. 이 책은 계절 흐름에 따라 가을 → 겨울 → 봄 → 여름 순서로 시인의 산골 생활이 우러난 41개의 챕터와 서문으로 구성되었다. 각 글들은 2 ~ 3쪽의 짧은 분량으로 독자가 읽어 나가기에 편하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의 담백성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다시 말해서 산골생활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과 올바른 생활이라는 자기과시적인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생각을 얼핏 들여다보자. ‘매년 반복되는 물난리는 물길을 막아 제방을 구축한 인간들 때문(13쪽)’이며, 잡목들로 이루어진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숲에 ‘진정 소중한 식물자원은 그 속에 있으니 세상이 어지럽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146쪽)’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186쪽)’이라고 생각하며, ‘내 몸이 주체하지 못할 커다란 소리로 울부짖던 때가 있었음(197쪽)’을 회고하는 시인의 진정성에 나는 20대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럼 표제가 말하는 고향은 시인에게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속 고향은 어찌 보면 죽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끝이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곳, 삶 속에 죽음이 어우러져 있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곳, 자신이 나온 곳, 그렇기에 돌아가야만 할 곳,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고향은 있다.(254~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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