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지은이 : 남정현
펴낸곳 : 실천문학사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독립군이었던 아버지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어머니는 해방군인 미군을 환영하러 나갔다가 미군에 강간당한 홧병으로 돌아가셨다. 누이동생 분이는 미군상사 스피드의 현지처로 밤마다 성적으로 학대당한다. 주인공은 거기에 빌붙어 미군물품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스피드 상사의 부인인 비취여사가 남편을 찾아 왔을 때 주인공은 관광안내자로 향미산에서 그동안의 의문이었던 비취여사의 ‘치부’를 검사한다. 이에 펜타곤 당국은 ‘이제 단 십분 후면 오물을 파괴하는 아름다운 섬광이 여러분의 심신을 황홀한 도취의 광장으로 안내(207쪽)’하는 전 세계 생중계를 펼치며, 이 땅의 1년 예산을 들여 ‘악의 씨’인 주인공을 날려 버리는 작전을 펼친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다. 분지(糞地)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작가는 7월 9일 중앙정보부에 긴급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고, 2년여에 걸친 재판에 시달렸다. 작가도 모르게 7월 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변호사 한승헌, 원로작가 안수길, 이어령 등이 변호에 나선다.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이다. ‘분지’사건 이후에도 작가의 고난은 계속 되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그 악명 높은 남산정보 지하실에 끌려갔다.
나는 작품이 발표된 지 25년여가 지나서야 접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80년도 다 기울어가던 ‘89년 초봄 그때. 나는 강남터미널 구내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펴낸곳은 도서출판 한겨레였다. 지방 소도시로 향하던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분지(糞地 - 똥땅).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몇 편의 소설이 실렸고, 책의 뒷부분에 필화사건의 재판과정과 항소이유서가 실려 독자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즉 남정현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이 땅에 반미문학의 지평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 선집에는 작가에게 1961년 제6회 동인문학상을 안겨 준 중편소설 ’너는 뭐냐‘외에 단편소설 13편이 실려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할 것은 그 시대 동인문학상 주관사는 조선일보사가 아닌 사상계였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은 굳이 사족을 덧붙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실린 단편소설에 ’허허선생‘ 연작 4편이 들어 있다.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인간이 권력과 재력을 손아귀에 넣은 이 땅의 어처구니없는 비현실성을 ’알레고리적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일련의 작품들이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군사독재 체제의 강압성과 부자유, 체제적 구속아래 놓인 시민생활, 사회 각 방면에 걸쳐 미국에 종속화한 현실(511쪽)‘을 상징, 풍자, 해학적으로 그렸다고 선집을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엿 같은 상황이 아직도 이 땅의 민중들을 가위 눌리고 있다는 데 있다. 동두천·의정부의 미국기지를 평택 대추리로 옮기면서 원주민들은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한다. 뼈속까지 친미에 물든 MB정권은 국가간 불평등조약인 한미FTA를 강행하면서 국민들에게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근래 들어 더욱 미군범죄가 극성이다. 지난 10년간 발생한 1,800여건의 미군범죄 중 국속수사를 받은 경우는 단 3건이다. 이것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PA) 제22조에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미군 범죄의 재판권은 미군에게 있다‘는데 ’공무 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미군 당국이다. 그 미군당국의 의사결정 방식은 이렇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민간 항공기를 격침시켰는데, 부시의 인터뷰는 이랬다. ’미국이 한 일에 대해 나는 결코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실이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