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뜰 앞의 잣나무

대빈창 2012. 3. 12. 06:00

 

 

책이름 : 뜰 앞의 잣나무

지은이 : 정찬주

펴낸곳 : 미들하우스

 

초조 달마 / 이조 혜가 / 삼조 승찬 / 사조 도신 / 오조 홍인 / 육조 혜능 / 마조 도일 / 운문 문언 / 조주 종심 / 임제 의헌

 

부제 ‘중국 10대 선사 禪 기행’이 가리키는 10명의 禪師들이다. 표지 그림은 화순 쌍봉사 호성전에 봉안된 조주선사의 진영이다. 화순 쌍봉사는 저자가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라는 이름의 산중에 지은 집 근처의 절이다. 열반하신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이고,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의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저자는 그만큼 불교적 사유가 뛰어난 글을 오랜 기간 발표해 왔다. 이 책은 덩핑, 뤄양, 첸산, 황메이, 광저우 등 광활한 중국 대륙 2,000km을 종단하며 돌아 본 ‘중국 불교 10대 선사들의 유적지 순례기’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속물(?)답게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어떤 모습과 과정으로 의발이 전수되는지 궁금했다. 초조 달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소림사 달마동에서 선의 씨앗을 뿌릴 밭을 기다리며 9년 면벽수도를 한다. 달마의 법문을 듣겠다고 혜가가 간청하나,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혜가는 칼을 꺼내 자신의 팔 하나를 잘라 받쳤고, 달마는 입을 열었다. 불교가 박해를 받자 혜가는 서주 환공산에 숨어 나무꾼처럼 살았다. 이때 나이 90대 초반이었다. 어느날 머리를 산발한 40대 거사가 제자 되기를 간청했다. 혜가는 승찬의 법기(法器)를 알아봤다. 승찬에게 14세의 사미승 도신이 찾아왔다. 도신이 9년동안 승찬 곁에서 정진하다 길주로 가 구족계를 받고 돌아오자, 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안 승찬은 전법의 게송을 내렸다. 도신이 홍인을 오조로 지목한 것은 가르친 지 20년만이었다. 일곱 살 홍인을 길거리에서 만나 부모에게 출가를 설득했다. 의발전수의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육조 혜능에서 펼쳐진다. 혜능은 가난하고 글을 몰랐는데, 홍인을 찾아와 제자 되기를 간청한다. 이에 홍인은 가장 힘든 일인 방아 찧기를 시켰다. 혜능은 키가 작고 몸이 가벼워 추요석이라는 돌을 허리춤에 달고 힘든 일을 했다. 혜능이 쓴 게송을 본 홍인은 혜능에게 돈교(단박에 깨치는 법)와 의발을 전수한다. 그때 혜능의 나이 23세로 행자 수행으로 방아를 찧는 지 8개월 만이었다.

이외에도 마조동에서 철저한 두타행(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끊어버린 무소유 상태에서 심신을 닦는 수행)을 펼친 마조 도일, ‘부처란 마른 똥막대기다’라고 일갈한 운문 문헌,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를 묻는 학인의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오히려 화두를 던진 조주 종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할을 던진 임제 의헌이 등장하여 21세기 찌들대로 찌든 속물 현대인의 천민성을 크게 꾸짖는다. 육조 혜능은 이렇게 말했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짓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 하지 말라.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덕이니라.’ 종교가 개인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을 등한시하고, 외형을 과시하는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이 말에서 자유로운 이 시대의 종교가 있을까. 이 땅의 종교는 한술 더 떠 정치의 수단으로 스스로 전락한지가 오래되었다.  하긴 초조 달마가 수행했던 소림사는 무술을 팔아먹는 도장으로 전락했다. 즉 ‘선(禪)은 없고, 권(拳)만 남았다. ’ 부끄러움도 물욕에 팔아넘긴 현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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