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대설주의보

대빈창 2012. 3. 15. 06:00

 

책이름 : 대설주의보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민음사

 

자칭 '얼치기 생태주의자'를 자처하며 홀어머니를 서해의 외딴 섬 주문도에 모신지도 3년이 넘었다. 그리고 독서에 있어 지독한 편식주의자인 나는 생태에 관련된 도서를 대량 구입하고 손가는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잡지는 녹색평론을 잡고, 사회평론집은 김종철의 책을 잡았다. 에세이와 소설은 최성각과 김곰치를 찾았고, 농촌소설은 이시백과 최용탁의 글에 요즘 한창 맛을 들였다. 그리고 시는 뒤늦게 관심을 가지면서 이문재의 시집을 잡았으나, 분량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움은 시에 대한 부족한 정보량을 탓하는데 무엇인가 날카롭게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도요새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최성각의 생태소설집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 』 였다. 그 책은 운 좋게도 세월이 한참 흘렀건만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얇은 책자의 뒷날개를 펼쳤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나의 번득이는 기억력에 스스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승호 생태시선집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나는 쾌재를 불렀다. 아뿔사! 2000년에 출간된 시집은 절판이었다. 나는 시인을 검색했다. 또다른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반딧불보호구역』 하지만 초간본과 재간행본 모두 품절이었다. 시인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담긴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시들을 접할 수 없어 아쉬웠다. 할 수 없었다. 나는 시인의 데뷔 시집과 최근 간행된 『아메바 』를 손에 넣었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 제설차 한대 올 리 없는 /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굵은 눈밭을 휘몰아치고 /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읽은 등산객들 있을 듯 /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르듯 덤벼드는 눈, /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읽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 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표제시 「대설주의보」의 전문이다. 보통시집보다 부피가 두텁다. 3부에 나뉘어 78수의 시편이 실렸고, 김우창의 「관찰과 시」라는 해설이 붙었다. 이 시집은 내가 대학에 들어간 ‘83년에 출간되었다. 80년대는 한마디로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군단과 계엄령이라는 시어에서 신군부의 쿠데타를 떠올리고, 굴뚝새의 피신에서 고달픈 민중들이 연상되었다. 대학시절 김남주의 직설화법에서 시대상황에 분노하고 저항하던 나는 지천명을 지나면서 최승호의 시집에서 지난 시절을 반추한다. 아니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나의 뇌세포는 맹렬하게 시대의 비극을 읽어 내려갔다. 「바퀴」(18쪽)의 ‘끌려가는 貢女/끌려가는 예수/채찍 맞는 조랑말’에서 임옥상의 〈아프리카 현대사〉와 신학철의 〈한국 근대사〉를 떠올리며 손때묻은 미술평론집을 다시 펼쳤고, 「이상한 도시」(57쪽)는 광주에서 ’화려한 휴가‘를 마친 신군부가 국보위를 설치한 그해 8월의 얼어붙은 도시 서울이 연상되었다. 「사북, 1980년 4월」 (81쪽)은 당연히 성완희 열사와 사북 동원탄좌 탄광노동자들이 지옥 같은 노동조건을 부수기 위해 일어선 사북사태를 가리켰다. 「시궁쥐」(88~89쪽)는 80년 8월 주한미군사령관 워컴의 ‘한국민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지도자를 따라갈 것이며, 한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발언이 생각났다.  「오늘(84쪽)」 의 ‘탄광이 폐광을 향하여/갱도를 넓게 뻗어가는 오늘’에서 당연히 태백·정선의 폐광에 들어선 카지노 강원랜드라는 꼴사나운  현실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북어」(101쪽)와 「깊은 밤」(133쪽)에 형상화된 북어의 모습은 혀가 묶이고 귀가 막힌 암울한 80년대의 민중들 이었다. 하지만 독점재벌의 언론에 길들여진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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