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대빈창 2012. 3. 19. 06:00

 

 

 

책이름 :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지은이 : 마하트마 간디

옮긴이 : 김태언

펴낸곳 : 녹색평론사

 

오랜만에 녹색평론사가 출간한 문고판을 집어 들었다. 표제가 눈길을 잡아 끈다. 어떻게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우선 카디를 걸친 간디가 물레를 돌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책장의 김종철의 녹색 에세이집 ‘간디의 물레’를 고개를 돌려 얼핏 바라보았다. 그렇다. 신영복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을 뒤적인다. 209쪽 ‘간디의 물레’에는 이렇게 적혔다.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지금 세계는 간디가 우려했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아니, 극단으로 치달은 물질문명은 브레이크 고장 난 열차처럼 파국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간디를 단순하게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해방으로 이끈 독립운동가로 보았다. 어리석은 자의 단순함이었다. 간디는 착취, 억압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구의 근대문명인 산업주의, 기계문명에 기댄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넘어서는 근원적 변화를 추구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도 산업화, 근대화 논리에 순응하면 결과적으로 자립, 자치의 능력을 상실한 또 다른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기에 간디는 인도의 70만개 농촌마을의 스와라지를 주창하고, 몸소 노구를 이끌고 행동했다. 여기서 간디는 문명의 진정한 의미를 ‘욕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욕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에 간디에게 도시는 ’마을 착취의 매개체이며, 국가라는 사회의 신체에 있는 부스럼‘일 뿐이었다.

간디는 정확히 미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근대적 산업화, 기계화는 ‘인류에게 무엇보다 큰 화근’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인류에게 저주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저주가 21세기 초 인류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지구온난화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10년에 한번 꼴로 나타난 자연재해가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대에 상관없이 연중 속출하고 있다. 모든 생물체가 살아갈 생명의 토대인 지구 생태계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의 물질적 탐욕으로 말미암아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단기간에 자본주의 선진국을 따라잡은 이 땅은 자신의 성과에 취해, 인류의 파국이 눈앞에 있는데도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다. 농업, 농촌, 농민의 전면적인 몰락과 식량자급율 23%라는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경제성장 논리로 한미 FTA를 타결 지었다. 즉 농업의 산업화가 농업 자체를 질식시킨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간디가 염려한 산업화, 근대화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문명을 지탱하는 화석연료가 바닥을 드러내는 오일피크(석유정점)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한 사람이 100여명의 노예를 부리는 꼴로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 토대는 값싼 화석연료다. 그 풍요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라는 지속불가능한 시대를 초래했다. 인류역사에서는 300여년에 불과한 아주 짧은 시기다. 줄어드는 화석연료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다. 다음 목표는 이란이 될 공산이 크다. 역설적이게 북한은 부존자원이 부족해 미국의 먹이감으로서 인기가 없다. 한민족의 행운(?)인가. 하지만 긴 시간으로 보면 인류는 간디가 꿈꾸던 세상, 즉 농촌 마을의 자립, 자치에 토대를 둔 진짜 민주주의가 꽃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리석은 인류가 스스로 그 길로 향하느냐, 아니면 극소수의 인류만이 남아 어쩔 수없이 석기시대로 유턴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알기로 호모 사피엔스는 죽어가면서도 물질적 탐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맹폭으로 간디가 추구한 자급적 삶의 방식에 대해 무자비한 전쟁을 선포하고 마구 때려 부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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