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대빈창 2012. 3. 22. 04:26

 

 

책이름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지은이 : 전쟁없는 세상, 한홍구, 박노자

펴낸곳 : 철수와영희

 

오태양/나동혁/염창근/임재성/김훈태/최준호/송인욱/조정의민/최진/고동주/안홍렬/오승록/오정록/유정민석/박철/임성환/강철민/경수/이원표/임치윤/문상현/이승규/김도형/최재영/김영진/정재훈/이용석/김태훈

 

이 책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 28인의 병역거부를 준비하던 시간에 대한 회상과 감옥에서 쓴 글과 편지 모음집이다. ‘여호와의 증인’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기억은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4년여를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그후 직업훈련원에서 중장비를 배우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 30대 중반이었다. 앞날이 캄캄했다. 깁스를 한 채 병원에서 시간을 흘렸다. 병문안을 온 동지들의 충고를 못 이긴 채 나는 시골로 낙향해 시험을 준비했다. 사회과학서적만 파고들던 나에게 시험공부는 생경했다. 그해 겨울, 삭풍이 몰아치던 어느날. 낯선 중년부인 두 명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찬바람에 얼굴이 파랗게 얼어 있었다. 시험공부에 실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기거하던 사랑채에서 두 여인에게 따듯한 커피를 대접했다. 그들은 고마워하며 나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일별하고 얇은 팜플릿을 내게 건넸다. 파수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으로 번졌다.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대화를 오히려 즐겼을 것이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시험공부에 따분해하던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망중한으로 여겼다. 일주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들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경직된 유물론자(?)의 시간 때우기에 동원된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아니면 일주일을 소비하고도 전혀 진전이 없는 나의 벽창호에 질린 것일까. 그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20여년이 다 되었다. 그후 나는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인식은 한국기독교의 기득권을 장악한 보수종단에 의해 이단으로 찍힌 소수 종파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1만 6천여명이 넘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평화주의 실천의 근본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었던가. 또한 불살생 교리의 불교도 중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집총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었는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4주일 군사훈련을 받으면 병역특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총을 들지않아 3년의 징역을 살고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고 2001년 12월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이 불교신도였다. 그리고 강철민은 현역군인으로서 최초로 병역을 거부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 나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양심 때문이었다. 현재 이 땅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1000여명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데, 이 수치는 세계 최고다. 현빈의 해병대 입대가 영웅시되는 병영국가 이 땅에서 병역거부는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의 70 ~ 80%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고 병역기피자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경제대국 세계 12위인 한국의 군비 지출 총액이 세계 11위이고, 무기 수입국은 5위에 랭크되었다. 아직도 정전 중으로 남북한 대립이라는 특수한 안보적 상황을 내세우지만, 중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눌리는 대만도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박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회에서의 군대란 사실 살인훈련보다는 복종훈련으로 철저하게 위계질서적 인간관계에 의한 훈련을 의미한다고. 그러기에 한국군대가 민간사회에 내보내는 인간형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독재형 직장관계에 순응적인 샐러리맨적인 인간형’이다. 즉 ‘인간로봇’이다.

한국 남성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재입대’일 것이다. 나는 군대에 갔다 왔다고 아무리 발쳐둥쳐도 덩치 큰 헌병 두 명이 팔을 뒤로 꺽어 훈련소에 강제로 쳐 넣는 꿈이다. 그만큼 한국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공포 자체다. 매년 300여명의 군복무 사망자 중 100여명이 자살자이며, 5000여명에 달하는 정신질환자가 발생하는 군대는 생지옥인 것이다. 고교를 졸업한 나는 작은형 대신 예비군 동원훈련에 몇 번 나갔다. 그때마다 사고가 터졌다. 야간 경계근무 중 삐삐선을 끊고 가까운 읍내로 진출하여 밤새 술을 퍼먹었다. 술기운을 빌린 예비군들은 동네 철공소에 들이닥쳐 텃세를 부리다가, 총기위협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훈련을 끝낸 선후배들은 읍내에서 함께 술자리를 하다가 폭행으로 연행되기가 다반사였다. 병영국가 대한민국의 제복의 힘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설움이 제복의 힘이 잠시나마 만인이 평등(?)하게 보이는 색안경을 제공한 것이다. 상업안보주의와 군사문화가 팽배한 대한민국에 볼모로 잡힌 가련한 인간군상들이었다. 내가 한국사회의 지평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세분의 진보주의자가 모두 이 책에 등장한다. '이웃을 마음껏 사랑하게 하라'라는 추천사를 쓴 홍세화. 한국사회에서 군대의 본질을 드러내 준 박노자. 한국징병제와 병역거부의 역사를 일러 준 한홍구. 나는 이제 대체복부제보다 한발 더 나아가 모병제를 주장한다. 그리고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를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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