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대빈창 2008. 9. 11. 16:40

 

 

책이름 :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지은이 : 김영현

펴낸곳 : 작가

 

작가 김영현이 회춘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과 올해 연이어 책을 내고있다.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과 소설모음집 '라일락 향기' 그리고 산문집인 이 책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이다. 나는 '바리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최고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황석영을 들겠다.'고. 그 말에는 원로 작가에 대한 예우도 포함된다.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중견작가로 나는 김영현을 든다. 그것은 민족민중문학 진영의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김영현 논쟁'이라는 즉 한국문학의 치열한 정체성 찾기의 중심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논쟁의 쟁점은 '리얼리즘'으로서 작가의 등단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두고 문학평론가들은 핏대를 올렸다. 그의 첫 창작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말많던 그 작품은 '우울하고도 빛나는 문체로 우리 사회의 폭압적 구조에 정면으로 대결'하여 문단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작가의 문학적 진실성은 시대적 질곡을 온 몸으로 헤쳐 나가면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내장한 힘에서 분출된다. 고통스럽지만 그 흔적을 들여다보자. '77년 서울대 학보사 편집장으로 구속되어 0.7평 독방에서 1년 반을 보내고 강제징집 당한다. 광주사태의 원흉으로 천인공노할 살인마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신군부에 의해 보안대로 끌려간다. 그리고 인간적 존엄성을 파괴 당하는 끔직한 고문을 보름동안 당한다. 작가는 말한다. '아직도 박하사탕 같은 영화를 볼 수 없다.'고. 고문의 상처는 아직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되지 않았다. 그 아픔을 작가는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럼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 '생의 위안'에서는 70 ~ 80년대 암흑기에 20 ~ 30대를 보냈던 운동권의 고문과 철창신세, 잠수(수배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2부 '사람들'은 작가의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작은 전기라고 할 수있다. 돌아가신 가난한 종지기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가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몇 년전 MBC에 책을 소개하는 '물음표'라는 프로가 있었다. 여기서 추천된 책의 작가는 억대를 넘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방송사 PD는 자랑스럽고 거만하게 선생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실어 주겠다는 자신의 글이 천박한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것에 대한 단호한 거부였다. 3부 '개똥철학'은 '부활'의 의미를 '현재의 외면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면적으로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된다.'는 깨달음이라고 피력한 글과 여러 종교에 대한 단상이 버무려졌다.

요즘 작가나 시인들이 유행처럼 가벼운 에세이를 내놓는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역사의 대로를 뚜벅뚜벅 걸어 온 작가답게 독자의 머리에 오래 남을 만한 향기를 품고있다. 그렇다고 글이 무거워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진저리나는 이 땅의 못난 현대사를 그만의 따듯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잔잔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이 책은 군홧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을 이겨낸 진보주의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책씻이 후 나의 뇌리에는 큰 상처입은 짐승이 울부짖으며 혀로 자신의 몸을 핥는 서러운 모습이 그려졌다. 책을 잃어 나가면서 나는 몇번이나 눈을 감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인간 내면에 와닿는 그의 민중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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