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지은이 : 리 호이나키
옮긴이 : 김종철
펴낸곳 : 녹색평론사
월파벽을 때리는 물결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청명한 하늘은 바다를 담은 거울 같았다. 바람이 일려는지 파라솔 깃이 부르르 떨었다. 얼룩이 진 녹슨 철제 원탁의 소주병을 잡는 윤선장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수전증은 세월먹은 문풍지를 닮아갔다. 백태 낀 오른 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흐릿해졌고, 왼 눈은 알코올이 내뿜는 열기로 흰자위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배를 옭아메야 하는데```" 눈길은 물결따라 흔들리는 어선을 향했지만, 그는 소주병을 입에 물었다. 앞섬 방파제를 건너뛴 바람이 해변 구멍가게로 막바로 들이닥쳤다. 윤선장은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사단을 일으킬 갈바람의 전초병이었다. 30년을 강화도 섬들 간을 오가던 여객선을 운행하던 세월은 바람의 결과 힘을 핏줄속에 새겨 넣었다. 아니다다를까 앞섬 상공으로 먹구름이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처럼 빠르게 동녘으로 흘러갔다. 그는 원탁 귀퉁이를 힙겹게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유일한 밥줄을 갈바람을 탄 백중사리 포말의 아가리에 쑤셔 넣을 수는 없었다. 비록 경운기 엔진을 떼어 단 1인용의 보잘것 없는 소형이지만 마누라가 떠난후 생사고락을 같이한 처지였다. 사리발이면 앞바다에 흩어진 여에 나가 벌떡게나 소라를 줍고, 조금발이면 미꾸라지를 꿰어 낚시를 드리면 농어가 손맛대로 올라왔다. 고마운 바다 생것들이 그의 목구멍 포도청을 달래 주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윤선장은 세상이 아수라 지옥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더 떨어질 나락이나 존재할까. 마누라는 아귀처럼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자식들에게 볼 면목도 없다. 5년 전 아내가 건장검진에서 자궁암 판정을 받았을때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래도 섬에서 수천 평의 땅뙈기를 가진 알부자였다. 윤선장은 30년 여객선 선장질을 하면서 변덕 심한 바다에 치를 떨었다. 봉급을 받으면 반너머 적금을 들고 만기가 되면 알뜰하게 전답을 사 들였다. 자식들은 아비의 고생을 알아주는 효자들이었다. 인천으로 유학가 그런대로 공부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 밥벌이를 하고 손자들을 줄줄이 낳았다. 두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암수술 비용은 무저갱이었다. 대학병원에서 3번의 수술 끝에 마누라가 숟가락을 놓자, 두 아들은 아파트에서 전세로 전락했고, 수중에는 고작 물새는 가랑잎보다 나을게 없는 어선이 전부였다. 저놈 '희망호'라도 건져야한다.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을 할퀴듯 갈바람이 포말을 끌고 월파벽을 세차게 때렸다. 물량장으로 향하는 도로가 물에 잠겨들고 있었다. '아니, 저 놈이 나를 반기네.' 집채만한 파도에 올라탄 희망호가 월파벽을 넘어 공중에 떠 있었다. 윤선장은 새끼를 품안으로 맞는 아비처럼 두손을 벌려 내밀었다.
짧은 이야기인 위글은 이 책의 저자인 리 호이나키가 아버지와 친척 그리고 주위 분들이 암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산업사회의 의료기술 시스템의 희생양이 될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처지에 분노가 치민 장을 읽고난 후 내가 알고있는 한 사람의 가련한 운명을 엽편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렇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말년을 암과 투병하다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치료 덕에 불편한 몸으로 몇 년 삶을 더 지속하거나, 치료과정 중 고통스런 죽음을 맞거나 현대의학이 자랑하는 첨단 의료기술의 실험대상이다. 심하게 말하면 마루타다. 나의 아버지는 2007년에 돌아 가셨다. 아버지께는 숨긴 사실이지만, 폐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되는 과정이었다. 암수술로 명성이 자자한 병원에서 수술일자를 잡고 가족들의 동의를 구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도대체 팔십을 넘긴 노인을 수술하겠다니,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권위의식이 뚝뚝 흘러 넘치는 전문적 의학용어의 남발(?)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 의사의 장광설에 대부분의 가족들은 수술 결정에 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후회하지 않는다. 5년동안 아버지는 1년에 한두번 병원신세를 지고는 까딱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시다 편하게 눈을 감으셨다. 나는 아버지를 화장하고 소신대로 자연으로 돌아가시라는 의미를 담아 큰 나무둥치에 묻어 드렸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는 저자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주장이 담겨있다. 이 땅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 특권적 직업인 대학교수를 스스로 팽개친 김종철, 윤구병 교수다. 이 책의 옮긴이인 김종철 교수는 영남대 영문학 교수직을 버리고, 환경생태 분야의 척박한 이땅을 갈아엎고 있다. 그리고 윤구병 교수는 15여년 전 충북대 교수를 스스로 메치고 변산에서 지역공동체와 대안학교를 꾸렸다. 그리고 지금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꿈을 심어주기 위해 '보리' 출판사를 꾸리면서 아동 글을 쓰고 있다. 어떤가. 이 분들은 정말 돈이라면 품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천박의 극치인 이땅에서 바보처럼 보인다. 그렇다. 바보는 바보다. 하지만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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