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를 가다

석탑만이 홀로 남아 영욕을 되새김질하다

대빈창 2012. 6. 20. 05:31

 

송해면은 조선시대 이래 송정(松亭)면과 삼해(三海)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두 면을 병합하여 송(松)자와 해(海)자를 따서 송해면이라 이름하였다. 숭뢰리저수지. 강화도에서 IMF 현실을 피부로 느낄수 있는 장소다. 뚝방을 따라 난 길은 승용차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차 번호판을 유심히 보라. 서울, 인천의 대처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저수지 물가는 낚시꾼들의 원색 차림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점묘법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 양사면 철산리. 양사(兩寺)면은 서사와 북사를 합쳐 두 개의 절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다. 철산리는 철곶부락과 산이포 포구를 합성한 행정명으로 ‘50년 이전에는 어항이 번성하여 시장이 형성되었다. 번성기에는 300세대 1,600여 주민이 살았고, 북녘 개풍군과 도선이 왕래했던 곳이다. 예전 번성했던 나루터는 철조망이 두눈을 부라리고, 지난 폭우로 쓰러진 벼포기들이 널려 있었다. 강건너 산들은 하나같이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민둥산이었고, 주체사상만세!라는 대형간판이 이물스럽다. 이곳에 서면 ’통일‘을 추상이 아닌 가슴으로 느낄수 있다. 나는 신영복 교수의 국토순례기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 들었다. 그는 철산리 언덕에 서서 우리에게 이런 엽서를 띄웠다. - 이곳은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바라보이고 예성강물이 다시 합수하는 곳입니다. 생각하면 이곳은 남쪽땅을 흘러온 한강과 휴전선 철조망 사이를 흘러온 임진강 그리고 분단조국 북녘 땅을 흘러온 예성강이 만나는 곳입니다. 파란만장한 강물의 역사를 끝마치고 바야흐로 바다가 되는 곳입니다. -

하점(河岾)면은 북부에 별립산, 동부에 고려산의 여맥 일부가 뻗어 봉천산을 이루고 있지만 대체로 드넓은 들판을 자랑는 평야지대이다. 나는 보물 제10호인 오층석탑을 찾아 장정리 SK주유소 옆길로 접어들었다. 민가 서너채를 지나면 시멘트 포장된 산길이 나타나고, 낮은 구릉 위 좁은 터에 강화도 유일의 석탑이 자리잡았다. 이 석탑은 원래 경사진 둔덕아래 솔밭으로 추정되는 절터 봉은사(奉恩寺) 내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0년 보수·재건시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봉은사는 몽고침입시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하였을 때 왕건의 원찰로 개성에 있던 봉은사를 본따 같은 이름의 제2사찰을 건립한 것이다. 그후 개성으로 환도되자 절은 세월의 풍우에 폐허로 변하고, 석탑만이 홀로 남아 그 시절 국찰로서의 영욕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석탑은 모르는 이가 보아도 한눈에 불구임을 알 수 있다. 단층 기단과 4매의 판석이 지대석을 이루었고, 1층과 2층에 몸돌과 지붕돌이 남아있고, 3층부터는 지붕돌만 겹쳐있다. 그리고 상륜부는 아예 없으며 남은 부분도 상처투성이다. 다행히 계곡부터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 석축을 6단으로 쌓아 지난 폭우에도 무사히 제몸을 보전하고 있었다. 이 터에 오면 나는 안온한 정감이 들었다. 그것은 양지바른 구릉위에 자리잡아 햇살이 따사롭고 철책 한켠에서 서로 몸을 비비는 산죽 군락이 보는이의 시선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곳은 병아리같은 유치원생들이 솔밭 여기저기 모여앉아 봄햇살을 만끽하며 김밥을 나눠먹는 정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없어진 몸돌을 손재주있는 석공이 직접 정으로 쪼아 석탑의 아픈 몸을 치료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계로 깍은 석물은 물기를 보듬지 못해 이끼가 자리를 못잡아 자연스런 맛이 없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열반하자 인도의 여러 나라는 사리를 여덟 몫으로 나누어 각국은 탑을 세웠는데 이를 ‘근본팔탑’이라 한다. 인도의 대보리사 대탑은 높이가 50m로 석가모니가 성불한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기에 탑은 열반의 길에 들어선 부처님의 삶이 영원히 안치된 성스러운 집인 것이다. 탑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은 인도의 봉분형인 산치대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의 상륜부로 전이되었다. 동양 삼국은 각국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탑의 재료를 찾아 고유의 특성을 이어왔다. 그러기에 한국은 석탑,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이 발달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탑하면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