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농무
지은이 : 신경림
펴낸곳 : 창비
본도인 강화도에 한달에 한번 꼴로 나간다. 매번 객선을 타면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 주문도에 생활한 지가 오래지 않았을 무렵에는 하잘것 없는 낭만적 감상으로 난간에 기대 주변 섬들의 풍광을 맛보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고, 주민들과 인사치레 차 대화로 시간을 때우거나, 아니면 들어오는 배는 포구 가게에서 술을 사 친분있는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무료한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나는 객실바닥에 편한 자세로 등을 대고 누워 책을 잡거나,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하지만 휴대하기 불편한 양장본 책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집이었다. 시집과는 별로 친하지않은 나에게 어떤 연유인지 뇌주름에 저장되어 있는 시집 20여권을 요즘 한번에 구입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시집이 바로 이 책이다. 창비시선 1호로 출간된 이 시집을 나는 3번 구입했다. 창비를 정기구독했던 학창시절과 공장을 다니다 다리가 부러져 하릴없이 시골집에 내려와 있던 즈음, 그리고 지금. '농무'의 초판은 초라하게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고작 300부를 자비 출간했다. 하지만 이 시집의 진가는 금새 드러났다. 1975년 창비시선 첫번째 호로 증보판이 나오고,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렇다. 그때까지 한국시단을 지배하던, 현실에서 벗어난 모더니즘의 난해한 시들이 판치는 시단에 민중문학의 출현이라는 고고한 팡파레를 울린 것이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 표제시 '농무'의 도입부문이다. 농악패들이 공연 후 공허함을 소주로 달랜다. 그런데 이상하다. 농악패들이 왜 가설무대에서 공연하는가. 어릴적 기억을 되살리면 마을 어른들이 농악패의 주연이었다. 지신도 밟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을 불러들이고, 그 댓가로 쌀 추렴도 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탈농정책으로 공동화 되어가는 농촌현실에서 '농무'는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돌아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서도면의 유권자 비율이 91%를 넘어섰다. 말 다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10 ~ 20년 후면 이 섬들에 남아날 사람들이 있을까. 어르신네들은 한 해에도 서너 분이 돌아오질 못할 길을 떠나시는데, 도대체 젊은이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이 소위 가증스런 위정자들이 터진 입이라고 떠드는 '농업의 경쟁력 저하'에서 오는 현상인가. 그럼 미국이나 식량수출국들의 농민들은 기술이 뛰어나고, 부지런하여 식량을 수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한 것인가. 이 땅의 경쟁력 없는 농업을 말살시키자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들의 거짓말에 넌덜머리가 난다. 식량수출국들은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무더기로 쏟아붓고 있다. 가뭄에 콩나듯 농민들에게 던져주는 푼돈도 아까워 그들은 오버액션을 취한다. 세계무역대국 10위라는 피날레의 이면에는 저곡가 정책으로 등허리가 휘어진 농민들의 어두운 그늘이 숨어있다. 이럴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창비시선이 300호를 넘어섰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신경림 시인은 나의 친구 함민복과 동향이다.언제인가 시인은 지나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경림 시인은 나의 고향 선배이시다.고. 얼핏 귓불이 붉어진 친구는 동향의 대문호가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