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도가니

대빈창 2010. 5. 29. 09:05

 

 

책이름 : 도가니

지은이 : 공지영

펴낸곳 : 창비

 

2008년 겨울부터 2009년 봄까지 나는 자투리 시간만 나면 포털 사이트 Daum에 들어가 연재소설과 에세이를 읽었다. 일주일에 화, 목 이틀은 시인친구 함민복의 에세이가 실리고, 공지영과 이기호의 소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재되었다. 시인의 글과 이기호의 소설 '사과는 잘해요'는 꼬박꼬박 읽어 갔지만, '도가니'는 몇 번 눈길만 주고, 화가 최규석의 일러스트만 인상에 남아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센터 공용도서로 구입한 책 목록에 ' 도가니'가 눈에 뜨였다. 1년전 온라인상에서 천대시했던 괜한 미안함이 발동했는지 모른다. 뒷표지의 두편의 표사가 눈길을 끈다. 헉! 숨이 컥 막힌다.

나는 이 소설의 표제를 보면서 우선 '9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를 떠올렸다. 실험적인 소설로 난해함으로 치자면 으뜸인 작가의 글을 나는 멀리 할수밖에 없었다. 꽤 먼 시절 한편의 소설에 불과한데도 얼핏 '개'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만 떠오른다. 그렇다. '93년이면 '개같은 시대'를 막 통과한 시점이었다. 우리는 흔히 '도가니'하면 자연스레 '열광'이라는 접두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인 '도가니'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나는 우선 발정(?)난 동물들이 뒤엉켜 있는 앞뒤 출구없이 그저 부글부글 끊고 있는 도가니를 떠올렸다. 청각·지체 장애인들이 모여사는 농아학교 '자애학원'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설립자를 부친으로 둔 쌍둥이 형제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생활지도 교사는 상습적으로 어린 농아들을 성폭행한다. 기존 교사들은 알면서도 밥줄을 끊기지 않으려고 눈감고. 새로 온 기간제 교사와 인권운동단체가 언론에 폭로하고, 법정싸움까지 벌인다. 하지만  학연·혈연·지연으로 뒤엉킨 기득권 세력은 온갖 거짓과 폭력과 협잡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시킨다.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터진 실제사건을 소재로 하고있다. 이 끓고 있는 도가니는 '자애학원'이 아니라 이 땅  전체다. '자애학원'사건은 끓고 있는 도가니의 한방울 거품에  불과하다. 신인 여배우가 성상납 강요에 못이겨 인간적 수치심에 목숨을 끊은 장자연 사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거대언론사 사장들이 발정난 개였다는 것을. 그런데 그 개의 권력에 주눈 든 이 땅의 검경은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고, 아니 손을 내려놓은게 아니다. 둘은 발정난 스폰서 관계였다. 언제 그랬는가 쉽게 도가니는 또 거품을 끊인다. 이 땅은 부(夫)의 딸 성폭행 사건이 뻑하면 터지는 몹쓸 나라가 되었다. '동방예의지국'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가히 '동물의 왕국' 수준으로 전락했다. 섹시미(옛말로 표현하면 남편 잡아먹을 도화살이다. 이런 말하면 나는 봉건적 가부장주의자로 전락하는가?)를 앞세운 자유분방(?)함이 온통 대중매체를 장악한 발정난 사회에서 이를 이겨낼 인문적 소양이 바닥난 돈벌레, 경제동물 수준으로는, 어떤 약발도 소용없을 것 같다. 도가니의 거품을 뜰채로 걷어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기에 인권운동단체 여간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다 접었어요 .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그렇다. 인권은 온데간데 없고, 힘 가진 자가 장땡인 동물의 우리 안에 이 사회는 갇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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