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여행의 기술
지은이 : 알랭 드 보통
옮긴이 : 정영목
펴낸곳 : 이레
창밖 하늘은 곧은 자로 일직선을 그어 3등분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원색 크레파스로 칠을 했다. 위 - 새파란 하늘, 중간 - 흰 구름, 아래 - 짙은 청색. 태양은 여전히 비행기 오른 날개위에 붙어있다. 그렇다. 비행기는 해가 지는 방향으로 날고 있다. 속도로 일몰을 늦추고 있다. 작은 창을 가린 플라스틱 커텐을 젖혔다. 아! 열대 하늘은 눈을 지상으로 뿌리지 못하고, 하늘에 감추었다. 한겨울밤 내내 퍼부은 함박눈이 잠이 덜 깬 눈으로 밀려 들어오는 하얀 천지. 이른 새벽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작은 둔덕을 이룬 끝없는 눈평원이었다. 시베리아의 광활한 툰드라처럼 끝이 없다. 눈평원 지평선은 주황색 라인이었다. 일몰인 것이다. 지상을 향한 작은 틈새도 보이지 않는 하얀 공중평원. 구름바다에 내리는 일몰의 장관이었다. 위 책 이미지인 비행기 창을 통해 내다 본 그림을 보면서 나의 생애 유일한 해외 여행이었던 태국행 비행기에서 바라본 일몰의 장관에 급히 긁적거렸던 메모를 옮겨 적었다. 아마 나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외여행일 것이다. 이제는 신혼여행도 대부분 괌이나 사이판, 호주 등 대중매체에서 접하던 그림같은 해변이나 휴양지에서 즐긴다. 주 5일근무와 삶의 질을 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솔직히 나는 해외여행자들이 하나도 안부럽다. 아니 이제 이 땅의 산야를 미친듯이 싸돌아다니던 배낭여행도 시들해졌다. 만사가 귀찮은 게으름 때문인가. 아니면 나도 이젠 삶을 반추하고 내면으로 침잠될 시점을 지나고 있는가. 지금 내 책장에는 여행 관련서가 가득하다. 문화유산 해설서, 맛기행 안내서, 전통건축 바로보기, 명찰 순례기 등. 그렇다. 이 책들은 여행 자체의 본질을 인식하기보다는 여행의 '표피'만을 강제한 것으로 이 시대의 '소비주의 여행'을 조장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떠나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출력한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조급해진다. 다시 올 수 없다는 초조함에 지역내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급히 둘러본다. 하지만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 같은 지리적 공간에 위치한다는 우연성일 뿐이다. 다행히 나는 그 조급성을 미리 차단하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에서 위안을 찾을 뿐이다. 이제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이 책은 앞선 삶을 살다간 예술가들의 배울만한 '여행의 기술'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서 돌아오기까지의 단계별 여정 -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의 각 장으로 구분하고, 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고흐, 호퍼, 버크, 러스킨 등의 예술가를 안내자로 초빙한다. 이 예술가 안내자들이 남긴 글과 그림을 따라 런던, 바베이도스, 마드리드, 이집트, 시나이 사막, 암스테르담, 레이크디스트릭트, 프로방스로 독자들은 여행을 떠난다. 이 예술가 안내자 중 화가들은 에드워드 호퍼, 반 고흐, 들라클루아, 루테르부르, 윌리엄 호지스가 등장하는데 그림 40여점으로 독자들의 '지적인 여행'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