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산에서 살다
지은이 : 최성현
펴낸곳 : 조화로운 삶
저자의 삶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자연의 삶을 따르라!'다. 1988년 지은이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뛰쳐나가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고보니 박달재에는 나와 책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이 두분 더 있다. 시인 김하돈과 판화가 이철수다. 언젠가 제천시의 박달재 고개 개발에 반대하는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세분 모두 환경·생태적 삶을 영위하고 있는만큼 난개발로 무너져가는 이 땅의 고통과 신음에 시린 가슴을 부여잡았으리라. 표지 이미지의 그림이 저자의 집일 것이다. 저자는 하루의 반을 농사짖고, 반은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는 반농반X의 삶을 살고있다. 저자의 농사법은 자연과 공생하는 자연농법이다. 이러한 삶은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의 창시자의 영향이 컸다. 내 책장에는 저자가 옮긴 '풀들의 전략'과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 꽂혀있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단편선' 2권이 어제 막 택배로 도착했다. 그것은 저자가 추구하는 삶이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책은 경전과 같다. 산속에서 풀과 공생하는 자연농법의 농장 이름은 '바보 이반 농장'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의 이야기'에는 손님이 찾아오면 손바닥부터 내놓게 한다.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혔으면 밥을 새로 지어서 주지만, 손이 계집손처럼 허여멀끔하면 먹다남은 밥을 건넨다. 손보다 머리를 쓰는 사람, 땀흘리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은 무시당하는 나라다. 어떤가. 진정 진실된 사람사는 나라일 것이다. 간단하다. 이 땅의 현실과 정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불로소득의 땅투기꾼들이 정권까지 장악한 갈데까지 간 나라에서, 저자의 삶은 정말 바보같다. 그렇지만 위대하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작은섬 주문도에서 행복을 꿈꾸기 위해 아니 즐기기 위해 터를 잡은 것이다.
한달만 있으면 내가 주문도와 인연을 맺은지 5년이 된다. 자의가 아닌 어쩔수없이 서도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서글펐다. 낯설고 물설은 서도행 카페리호에서 앞이 막막했다. 그만큼 나에게 서도는 낯설었다. 사실 서도를 지켜주던 대선배가 정년을 맞자, 우리중 누가 이 먼 낙도에서 근무를 할 것인지 서로가 내색은 안했지만 두려웠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사무실과 관사 그리고 밥을 사먹던 하숙집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통진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뵈러 섬을 벗어났다. 2년여가 흘렀을까. 섬생활에 그럭저럭 정이 들었다. 그래 어머니를 섬으로 모시고 들어오는 것도 괜찮겠다. 그때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화장한 유골을 남몰래 섬에 모셨다. 눈여겨 봐두었던 봉구산의 노거수 발치에 밤중에 홀로 모셨다. 나름대로 일종의 가매장이었다. 그해 겨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지금의 집을 어렵사리 구했다. 그리고 통진에서 주문도로 이사했다. 그때 김포는 '한강신도시'라는 미친 개발바람에 휩싸였다. 땅값이 널뛰기를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땅부자가 아니었다. 돈독이 오른 땅주인에게 이웃사촌으로서의 정은 오히려 번거로웠다. 이사비로 기백만원이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절대농지였던 논을 처분하니 형제들에게 작은돈이 분배됐다.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5년생 모과나무와 3년생 매화나무를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그리고 가맹장한 아버지를 모과나무에 모셨다. 나만의 수목장이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비석에 아버지의 기일과 영세명,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시다.'라는 문구를 새겨 나무 발치에 표식을 해드렸다. 이후 명절과 기일에 나는 막걸리를 나무둥치에 따라 드렸다.(하지만 아버지는 살아생전 술을 입에 안 대셨다) 매화나무는 어머니 무덤으로 준비했다. 개각충에 시달리는 나무를 살리느라 올봄에는 고생 좀 했다. 나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뻗었는데, 매화는 달랑 한개만 달았다. 나는 어머니의 비석 문구를 이렇게 새길 것이다. '매화나무 그늘아래 잠드시다.' 그리고 내가 묻힐 나무를 올봄 식재했다. 뽕나무다. '이 땅의 큰 나무'라는 책에서 눈동냥하니, 강원 정선의 뽕나무 두 그루는 나이가 500살이 넘었다. 사람의 손만 안 타면 뽕나무도 노거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산증인이었다. 내 비석 문구는 무엇이 좋을까. '뽕나무에 영혼을 의탁하다.' 좀더 생각해야겠다. 이렇게 무덤자리를 준비하니,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상품 소비자라는 한개의 부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나의 생태의식을 여기까지 이끌어 준 '녹색평론'에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