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대한민국 史 - 2(아리랑 김산에서 월남 김상사까지)
지은이 : 한홍구
펴낸곳 : 한겨레출판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무지가 분단 이래 정통성 없이 이 사회를 지배해 온 수구세력에게 강력한 지배수단이 되어온 까닭이다’ 홍세화가 표사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 그 무지는 바로 이 땅의 역사를 질곡에 빠뜨린 자를 숭배하고 기념관까지 만들었다. 젊은 시절 박정희의 천부적인 기회주의적 변신을 들여다보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을 2년간 하다가 스스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 해방직후 광복군과 남로당에 가담했다. 여순사건 이후 숙군과정에서 극적인 변신으로 살아남아 후에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사회주의자에 대한 콤플렉스로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악랄한 강제전향 공작을 펼쳤다. 이 땅의 수구언론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가 27년 징역에서 풀려난 것을 대서특필하면서 자유의 횃불을 드는 것처럼 꼴갑을 떨지만, 이 땅의 장기수들 총 94명이 평균 31년, 즉 0.7평 독방에서 악랄한 고문을 이겨내면서 모두 2,854년 징역을 산 부끄러운 현실을 일부러 눈감았다.
우리는 툭 하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으로 이민족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였으나, 반만년을 끈질기게 이어온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저자는 한민족의 가해자로서의 잔인성을 끄집어내 우리 자신을 뒤돌아볼 것을 권유했다. 1931년 만보산 사건에 대한 오보로 조선인들의 반중국인 폭동은 죄 없는 화교 100여명을 살상했다. 대한민국은 미군의 용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30만 참전용사를 파병해 토벌작전에서 80여건의 학살을 저질러놓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일본정부에 떳떳하게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민족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전쟁 중 같은 동족에게 100만명이 넘게 학살을 저질렀다. 더 어이없는 것은 전쟁 중 예비군인 국민방위군 50여 만명을 징집해 놓고, 예산 착복으로 후방에서 굶어죽고 얼어 죽고 맞아죽은 이가 5만 명이었고, 전체의 80%가 폐인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아니 알면서도 숨기는 권력을 쥔 수구세력은 전쟁기념관을 짓고, 6·25기념 행사를 벌이면서 병영화된 이 땅에서 불쌍한 민중들의 스톡홀름 증후군을 강화시키는데 오늘도 혈안이 되었다.
이 땅에서 가장 나쁜 욕은 ‘호로자식’이다. 즉 애비 없이 자라 막 돼먹은 놈으로 근본은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태어나는 근·현대사에 무지하다. 아니 민주와는 담 싼 제도권 교육은 온갖 거짓, 조작된 역사관으로 일관했다. 그러기에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이 땅의 현대사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횡행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온 국토가 병영화된 국가에서 스톡홀름증후군에 시달리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백신에 다름 아니다. ‘영혼 없는 돈벌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약물로 이만한 치료제가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