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라진 내일

대빈창 2012. 7. 26. 05:00

 

 

책이름 : 사라진 내일

지은이 : 헤더 로저스

옮긴이 : 이수영

펴낸곳 : 삼인

 

 

아침 배가 아차도 꽃치를 지나면서 방파제 너머에 상체를 드러낸 채 볼음도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나는 주문도의 봉구산 자락에서 서도 군도로 진입한 아침 객선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덩치 큰 청소차의 녹색 적재함이 보였다. 오늘은 어느 섬의 쓰레기가 뭍으로 실려 나갈까. 행정구역 리별로 쓰레기 수집 컨테이너가 하나씩 놓였다. 섬 주민들은 가정용쓰레기를 컨테이너에 아무대고 던져 넣었다. 적재함이 가득 차면 청소차가 뭍에서 들어와 빈 컨테이너를 내려놓고 쓰레기가 가득 찬 적재함을 달고 나갔다. 분명 쓰레기들은 육지에서 사람에 의해 섬으로 끌려 들어왔거나 조류를 타고 섬의 해안에 떠밀려 들어 온 쓰레기다. 매일 바닷가에 나이 드신 섬 주민들이 청소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봉사활동 차원에서 해안가를 청소하는 것이 아니다. 해안쓰레기 인부임은 서울시와 경기도의 보조금으로 충당되었다. 섬은 공산품을 생산하는 시설물이 단 한곳도 없다. 그러기에 섬은 스스로 쓰레기를 만들 수 없다. 농사를 짓거나 어업활동에서 생산된 부산물은 모두 유기물로 퇴비나 거름으로 땅에 되돌려진다. 컨테이너의 쓰레기는 하루 두 번 왕복하는 카페리호를 따라 섬으로 흘러든 것이다. 주민들은 뭍에 나갈 적마다 어쩔 수없이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품을 들고 섬에 들어왔다. 강화도 앞바다는 한강의 하구이기도 하다. 서울과 경기의 수도권 인구가 내버린 쓰레기가 한강을 따라 강화 앞바다로 떠내려 왔다. 과장이 아니다. 그물을 들면 해산물이 1할이고, 쓰레기가 9할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란 다름 아닌 쓰레기 량의 폭발적인 증가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인류 문명이 쌓아올린 유적 3가지가 보인다고 한다. 그 유명한 중국의 만리장성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고 미국 뉴욕시 쓰레기 매립지인 프레시 킬스다. 이 책은 ‘쓰레기’라는 렌즈를 통해 본 1800년부터 현재의 미국의 역사와 문화다. 미국은 세계 최악의 쓰레기 생산국이다. 전 세계 인구의 4%가 지구 자원의 30%를 소비하고, 전체 쓰레기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날마다 1인당 2kg의 쓰레기를 버린다. 미국 생산품의 80%는 한번 쓰고 버려졌다.

이 책의 부제는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다. 인류는 유사 이래 최고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넘쳐 나는 쓰레기로 모든 생물체의 어머니인 지구가 몸살을 앓다 못해 임종을 앞두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이 생산한 쓰레기는 자국을 넘어 남반구로 수출되고 있다. 오늘날 쓰레기 수출은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미국은 가증스럽게 바젤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고있다. 바젤협약이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유해폐기물을 규제하는 국제협약이다. 쓰레기 처리 비용의 부담으로 값싼 해외 노동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쓰레기가 이동한다. 지금 시대의 대표적인 쓰레기는 전자폐기물과 플라스틱이다. 해외로 팔려 나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50%가 부적절한 물질과 혼합되어 재활용할 수 없다. 이중 5%만 재활용되고 95%의 플라스틱은 해양에 투기된다. 태평양 환류지역에 북아메리카 대륙 두 배 크기의 플라스틱 섬이 둥둥 떠다닌다.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을 주워먹은 새와 물고기가 죽고, 바다에 가라앉은 플라스틱의 독성은 생태계 먹이사슬을 타고 인간의 몸에 저장된다.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가증스런 황혼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피해를 가름할 수 없다는 것은 피해가 없다는 말과 같다. 지금 시대 가장 악성이면서 대량으로 수출되는 쓰레기는 ‘전자폐기물’이다. 한국판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8년 1월호 기사 ‘하이테크 시대의 그늘, 전자쓰레기’ 도입부를 발췌한다. ‘이곳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 질척한 길옆으로 헌 TV, 부품을 제거한 컴퓨터 케이스, 잘게 부순 모니터 조각들이 척척 쌓이는가 싶더니 이내 3m 높이가 된다. 잿더미 사이로 호박빛과 초록빛이 반짝인다. 뾰족뾰족한 회로기판 조각들이다. 작은 불덩이들이 여기저기서 타고 있다. 막대기로 불구덩이를 헤집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컴퓨터 전선 뭉치를 한아름 안고 나르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들이다.’ 전자쓰레기는 납, 수은, 카드뮴, 베릴륨, 크롬 등 유독물질 덩어리다.

인류와 전 생태계를 위협하는 독성 쓰레기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한 세기 전이다. 선진국의 현대인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살을 살 수 있다. 한 인간의 수명이라는 덧없는 시간에, 45억년 역사의 지구와 미래세대에게 쓰레기 지구를 물려주는 현대인은 얼마나 큰 빚을 지는 것일까. 끝으로 이 책의 장점은 쓰레기를 소비가 아닌 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환적 모색을 이루는 저자의 용기다. 책을 잡으면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각주가 뒤에 붙어 책읽기의 몰입을 방해한다. 독자를 배려하는 편집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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