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지은이 : 정약용
엮은이 : 박석무
펴낸곳 : 창비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천리의 먼 곳에서 본 마음을 담았구려/오랜 세월에 붉은빛 이미 바랬으니/늘그막에 서러운 생각만 일어나네/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는/아들 경계해주는 글귀나 써보았네/바라노니 어버이 마음 제대로 헤아려서/평생토록 가슴속에 새겨두거라
시 하피첩(霞帔帖)의 전문이다. 몸이 아픈 아내가 귀양살이하는 남편에게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활옷 치마 다섯폭을 보냈다. 다산은 바랜 비단치마를 재단하여 작은 첩을 만들었다. 두 아들에게 보낸 교훈 글이었다. 다행히 2006년 세 첩의 하피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은 치마폭은 시집가는 외동딸에게 화제(畵題)와 설명까지 단 매조도(梅鳥圖)를 그려 보냈다. 하피첩의 일화에서 보듯 다산은 아들·딸에게 자상한 아버지였듯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에게는 속깊은 동생이었고, 제자들을 아끼는 올바른 스승이었다. 이 책은 아들, 형,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61편이 실렸다.
다산의 생몰연대는 1762년 ~ 1836년이다. 다산은 나이 40세(1818년)에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장기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강진으로 이배되어 1818년(57세)까지 18년 동안 긴 유배생활을 살았다. 조선후기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다산 정약용은 이 유배생활 18년을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로 자리매김했다. 다산은 생전 책 500여권을 저술하였고, 시 2,500여수를 남긴 학자이자 사상가요 최고의 시인이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어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50쇄나 찍은 명저의 반열에 오른 책은 작고한 시인조태일의 강권에 의해 태어났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다산과 편역자가 제대로 만났다. 편역자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면서 4차례나 옥고를 겪은 박석무다. 역자는 옥고를 치르면서 시대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짓눌린 민중을 대변하던 다산의 진면목을 보았다. 18년 유배생활에서 학문을 성숙시킨 다산과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에 저항하다 감옥에 갖힌 편역자는 200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사이에 두고 민중의 아픔을 껴안고 고민하였다.
양장본의 겉표지는 차(茶)색으로 저자의 아호 다산(茶山)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다산이 지은 책으로 몇 년 전 우연히 손에 넣은 ‘다산문학선집’ 이후 이 책이 두 번째다. 그리고 돌베개에서 시리즈로 펴내는 ‘우리 고전’에서 다산의 산문 선집인 ‘다산의 마음’을 손에 넣었으나 아직 펼치지 못했다. 다산의 시 ‘애절양’을 만나야겠다. 서둘러 다산 시선집인 ‘다산의 풍경’을 온라인 서적 가트에 넣었다. ‘정치의 잘못을 일깨우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11쪽)’ 다산의 일갈이다. 유네스코는 금년도 세계 기념인물로 다산을 선정했다. 루소, 드뷔시, 헤르만 헤세와 함께 4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