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김용택의 어머니
지은이 : 김용택
찍은이 : 황헌만
펴낸곳 : 문학동네
나는 시인 김용택을 90년대 중반에 만났다. 4 - H 야영대회의 캠프파이어 시낭송 시간에 연작시 섬진강 중 한편을 권했기 때문이다. 그때 시집이 나의 책장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시집 중 가장 묵은 시집이다. 그리고 충북 음성의 후배를 만나러 가면서 자투리 시간을 메울 요량으로 산문집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를 고속터미널 구내서점에서 구입했다. 부피가 얇은 책인데도 양장본으로 기억된다. 몇 쪽 펼치지 못하고, 귀향하면서 후배에게 뺏기고 말았다. 다음은 ‘섬진강 아이들’이다. 3권짜리 산문집으로 기억되는데, 먼저 나온 두 권을 손에 잡았다. 겉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조무래기들이 강에서 물장구를 치다 징검다리 바위에 알몸으로 엎드려 몸을 말리는 사진이었다. 나는 어릴 적 유난히 물에서 놀길 좋아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동네 앞 김포 들녘을 적시는 한강 지류에서 살다시피 했다. 신나게 물에서 놀다보면 귀에 물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폭양에 달아오른 조약돌을 귀에 대거나, 노깡으로 불리는 시멘트 구조물에 귀를 대고 옆으로 누우면 귀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중이염을 예방하는 요령이었다. 주민자치센터에 신간도서가 들어왔다. 박스를 열자 이 책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 끌었다. 시인 김용택을 만나는 네 번째 책이었다. 어머니. 안쓰러운 삶에 대한 슬픔과 연민을 느끼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40편이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시와 일기문이 7편씩 실렸다. 책갈피마다 시원시원하게 펼쳐 진 섬진강 진메 마을의 사계절 사진은 발군의 영상미학을 자랑하는 황헌만의 작품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몸집이 작고 야무지게 일처리를 한다고 해서 별명이 ‘양글이 양반’이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의 순서는 ‘양글이 양반’의 삶과 일상을 계절의 흐름을 좇았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우리 농촌의 풍광과 늙어가는 어머니의 생에 대한 애틋한 헌사다.
“어매는 어치고 헐라고?”
나는 그때야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나는 걸어갈란다.”
가슴이 꽉 메어왔다.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었다.
“차 간다. 어서 가거라.”
나는 책장을 넘기다 여기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순창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인은 기성회비를 못내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차비가 없는 어린 시인은 뙤약볕 아래 자갈길 14킬로를 걸어 임실 진메마을로 들어섰다. 그때 시인의 무거운 마음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때는 부지깽이 손도 빌린다는 유월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강 건너 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다. 주중에 집에 돌아 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놀랐다. 어머니는 아들 손을 붙잡고 집에 들러, 기르던 닭들을 망태에 담아 장터로 갔다. 닭 판돈 전부가 아들의 기성회비와 차비 밖에 안 되었다. 구워삶을 것 같은 폭양아래서 어머니는 빈 망태를 둘러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아들이 탄 차가 떠나자 시오리길 집을 향해 어머니는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