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몽실 언니
지은이 : 권정생
그린이 : 이철수
펴낸곳 : 창비
귀밑 단발머리에 하얀 저고리와 검정 통치마를 입었다. 빨간 포대기에 아기를 들러 맸다. 한 다리가 짧아 걸음걸이가 어색하다. 절름발이 몽실 언니다. 등에 업힌 아기는 이복동생인 난남일 것이다. 새어머니 북촌댁은 난남이를 낳고 지병인 폐병으로 죽었다. 어린소녀 몽실이는 아기 난남이를 생쌀을 입으로 씹어 죽을 끊이는 암죽으로 이복동생의 목숨을 살렸다. 몽실 언니의 시대적 배경은 분단과 전쟁으로 어린 소녀 몽실이가 아버지가 다르거나 어머니가 다른 이복동생들인 난남이, 영득이, 영순이를 돌봐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표지 그림은 이철수의 목판화다.
우리 시대 어린이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1984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170쇄를 찍어냈고, 100만부를 돌파했다. 그리고 2000년 양장본으로 개정판을 펴냈다. 올 해 100만부 돌파 기념으로 개정 4판이 새로 나왔는데, 판화가 이철수의 신작 목판화가 실렸다. 게으른 나는 개정판이 나온 것을 알고, 책장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묵은 책을 서둘러 꺼냈다. 저자 권정생은 2007년 5월 17일 지병이 악화되어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0살 나던 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가난으로 아홉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여러 병으로 몸이 아팠으나, 식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병이 악화되어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아픈 몸으로 작은 교회의 종지기로 연명하며 죽을 때까지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몽실 언니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 등 극악스럽게 모진 이 땅의 현대사를 살아 온 보통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를 대신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 줄곧 눈시울이 뜨거워져 책갈피를 덮고 먼데 눈길을 돌렸다.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는 몽실 언니의 삶은 우리 시대 어머니의 삶이었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의 어릴 적 얘기 한 토막을 들려주셨다. 내가 태어 난 마을의 자연부락명은 ‘한들고개’였다. 언덕 꼭대기의 초가집이 우리 집이었다. 나는 걸음마와 말 배우기가 더뎠다. 해가 지글지글 끊는 복중 한낮에 어린 내가 눈물 콧물이 범벅인 채 걷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땅에 끌며 언덕을 내려오면서 엄마를 찾았다.
“알, 아이. 알, 아이······”
여기서 ‘알’은 계란을 말하고, ‘아이’는 ‘아이스께끼’를 뜻한다. 그 시절 계란 한 알이 아이스께끼 한 개 값이었다. 들녘에 김매기 품을 팔러 나간 어미를 찾아 걷지도 못하는 어린 내가 언덕을 내려오면 마음씨 좋으신 이웃집 할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어르셨단다. 몸이 허약했던 나는 할머니가 어렵게 구입한 ‘원기소’ 두 통을 먹고 정상적으로 발육을 시작했다. 섬으로 이사 오기 전 어머니와 내가 ‘한들고개’에 살 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권정생 선생을 녹색평론에서 출간된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리고 엊그제 소설 ‘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한티재 하늘’ 그리고 산문집 ‘빌뱅이 언덕’을 새로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을 후원한다. 아무 죄 없이 굶주리며 죽어가는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작은 온정의 손길을 뻗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