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지식의 미술관
지은이 : 이주헌
펴낸곳 : 아트북스
나는 한 장 남은 미술관 티켓을 써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큐레이터를 맡아 미술관의 전시를 기획했다. 나의 발길은 ‘지식의 미술관’으로 향했다. 앞서 ‘역사의 미술관’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졌지만, 이번 ‘지식의 미술관’은 5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다. 제1관 ‘그림, 눈으로 읽을까, 마음으로 읽을까’는 독특한 창작의 양식과 기법을 소개하고, 제2관 ‘창조의 기원, 감동의 기원’은 미술 장르의 탄생 배경과 변천 과정을, 제3관 ‘감각의 미로에서 숨바꼭질을 하다’는 한 시대를 풍미한 트렌드를 이야기하고, 제4관 ‘그림이 시대를 그리는가, 시대가 그림을 그리는가’는 미술 사조와 시대의식의 연관성을, 제5관 ‘그림 바깥의 욕망을 읽어라’는 그림에 대한 작가와 시장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그림들을 전시했다.
저자는 그림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직관력을 키우라고 얘기한다. 단순히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뛰어난 감식안을 갖출 수 없다. 그림의 핵심에 바로 도달하는 것이 직관력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직관이란 ‘추론이나 이성의 작용 없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능력을 말하며, 상상력과 영감 다음에 오는 고차원적 지식의 최종 단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더해져야 직관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른 개의 미술 키워드로 흥미진진한 미술 세계의 속살을 독자에게 보여주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창작기법은 데페이즈망으로 우리말로 전치(轉置)라고 하는데,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말한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19C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의 이름을 딴 병리현상으로 걸작 미술품을 보고 감자기 흥분상태에 빠지거나 이상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가리킨다. 빈센트 반 고흐는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앞에서 스탕달 신드롬에 빠졌다. 고흐는 ‘이 그림 앞에 앉아 2주를 더 보낼 수 있다면 내 수명에서 10년이라도 떼어주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와 비슷한 증상으로 루벤스 신드롬이 있는데, 인체를 그린 명화를 보고 일부 관객들이 성적인 의미가 담긴 행동을 하는 경향을 말한다.
나는 TV 앞에 넋을 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느 휴일 저녁 밥상머리에서 우연히 브라운관에 눈길을 주다, 한 인디밴드의 보컬에 빠져 들었다. ‘나가수 2’의 경연에 나온 ‘국카스텐’이었다. 그들이 열창한 ‘한잔의 추억’은 나의 18번지이기도 했다. 락으로 편곡된 밴드의 노래는 마이크만 들면 아무 곡이나 금속성 보컬로 악을 쓰는 나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국카스텐’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독일어로 ‘만화경’이었다. 그렇다. 그룹명과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이 ‘한잔의 추억’으로 개념 정리되었다. 그처럼 이 책은 어설펐던 나의 미술 상식을 교통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휴일 아침, 나의 눈길을 잡아매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역사적인 미스터리를 소개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다. 그런데 여기서 소개한 몇 편의 미술관련 미스터리가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면서 예카테니나궁의 호화로운 호박방을 통째로 뜯어냈다.
지금까지 거래된 최고가의 미술작품은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4천 달러에 낙찰된 잭슨 폴록의 ‘넘버 5’다. 하지만 플록이 간판스타가 된 이면에는 CIA의 공작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순수를 표방하는 추상표현주의가 국가권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식민지 혹은 약소국으로부터 유물을 약탈해 와 제국의 문화재로 삼는 행위를 ‘엘기니즘’이라 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행위를 ‘엘긴의 변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술품 약탈을 제도화한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이 약탈한 유물은 루브르를 넘쳐 베네치아 미술관, 밀라노 브레리 갤러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마드리드 프라도를 세우는 뼈대가 되었다. 여기서 엘긴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을 통째로 떼어 간 영국의 엘긴 백작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