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차가운 웃음
지은이 : 유승도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차가운 웃음 - 고향은 있다, 일방적 사랑 - 수염 기르기. 시인이 현재까지 펴낸 책들이다. 쌍 지어진 책에서 앞은 시집이고, 뒤는 산문집이다. 시인은 ‘95년에 등단해서 3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상자했다. 저자는 매번 시집과 산문집을 거의 같은 시기에 내놓았다. 나는 이 시집과 같은 출판사에서 간행한 두 번 째 산문집 ’고향은 있다‘를 앞서 블로그에 올렸다. 시인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예일리의 만경대산 중턱인 해발 600m의 산골에서 15년 째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다. 산 속에서 토종벌을 치고, 포도·고추·두릅·배추·감자를 키운다. 시인이 산 속으로 들어 간 데는 세상과의 불화가 컸다. 80년대초 군홧발 정권의 국가 폭력에 시달린 것이다. 국문과를 졸업한 시인은 노가다 판의 막일꾼, 농가의 머슴살이, 어선의 선원, 탄광 광부로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정선 구절리의 빈 사택에서 살아가던 시절 문득 시가 그를 찾아왔다. 그 시들은 첫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에 모였다.
이 시집에 실린 시 67편은 부로 나뉘지 않은 채 그냥 묶였다. 순서가 어떤 체계로 짜였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시의 소재로 야생 동물과 가축들이 무한정 등장한다. 개, 흑염소, 까치, 까마귀, 산비둘기, 풀벌레, 꿩, 청설모, 매미, 쥐, 구더기, 두꺼비, 너구리, 고슴도치, 산양, 닭, 토끼, 박새, 나비, 살쾡이 등. 그리고 이 동물들과 새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개울물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등 의성어가 시편마다 가득하다. 산속에 사는 시인이 쓴 시는 으레 자연서정시로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시집의 시편들은 냉소와 아이러니로 가득 찼다. 산골의 일상은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한 따듯함이 아닌, 연민이 허락되지 않는 비정함으로 차가움이 지배한다.
목에 줄을 걸 때까지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그러지 마라 곧 너를 잡아 삶아 먹을 텐데 그러면 네 고기 맛이 어찌 좋겠냐/가만히 있어라 꼭 그렇게 살갑게 다가오려면 아예 내게 덤벼들어라 그래서 줄을 놓게 하여 저 산속 깊이 들어가서 살아라/그래도 개는 둥글게 만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그런다고 너를 살려두진 않을 테니 이제 그만 해라 그리고 잘 가라/그래도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살랑살랑, 전문 / 22쪽)
곧 잡아먹힐 개가 살갑게 웃으며 꼬리를 흔들며 시인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시인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개를 잡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시인의 산중이나 내가 생활하는 외딴 섬이나 개를 기를 수밖에 없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섬에 들어오고 우리 집은 네마리 째 개를 키우고 있다. 나는 못나게도 개를 잡지 못한다. 복이 다가오면 개를 탐내는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 정이 들어 개를 내놓기 아쉬워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개는 오래 먹이면 영물이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