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상식 : 대한민국 망한다
지은이 : 박승옥
펴낸곳 : 도서출판 해밀
냄비에 담긴 물이 서서히 데워지고 있었다. 온 몸을 휘감는 온수에 긴장으로 팽팽하던 근육이 기분 좋게 이완되었다. 냄비의 물이 더워지는 것을 개발과 성장이라 불렀다. 편의를 추구하며 욕구가 충족되는 만족스러움에 위기를 눈치 챌 수 없었다. 물을 덥히는 연료는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주었다. 냄비 속의 개구리들은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 즉 슬기동물이라 불렀다. 여기서 냄비는 우주에서 생물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인 지구다. 나무로 불을 피우던 개구리들은 석유와 방사능이 효율성 높은 연료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구라는 냄비가 뜨거워지는 열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버리고 말았다. 물이 점점 뜨거워져 죽는 개구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다. 개구리들은 물이 갑자기 뜨거워지면 살려고 냄비 속에서 튀어 나간다. 하지만 서서히 물이 데워지면 온도변화를 눈치 못 채고 냄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슬기 동물은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터를 스스로 파괴하고 자멸했다.
지금 한반도는 지구온난화를 과학이론과 개념이 아닌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날씨가 미쳤다. 무자비한 폭염과 가뭄이 한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 땅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이 열파에 시달려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떠들어대거나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모두 기후변화라는 지구의 보복에 두려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 슬기동물은 기후변화라는 스포츠카를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 20세기 초 약 16억이던 호모 사피엔스는 1세기만에 70억으로 늘어났다. 더군다나 숲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20세기 100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던 원시림의 3/4가 파괴되었다.
이 책의 표제 ‘대한민국 망한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멸한다는 것과 통한다. 압축개발과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연출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린 대한민국이 가장 뚜렷한 전조를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는 혁명으로 더 발전적인 사회체제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라, ‘석유 자원의 정점’을 고비로 스스로 내리막길을 걸어 자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근대 서구 산업문명을 자원 낭비의 고갈로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생물체 멸종을 가져 올 문명으로 진단 내렸다. 무섭도록 근대화, 산업화의 길로 달려 온 대한민국은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곧 망할 수밖에 없다. 현대인은 석유를 먹고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석유와 가스다. 그런데 석유생산의 정점이 이미 지났거나 코앞에 닥쳤다고 에너지학자들은 경고음을 울렸다. 성인 한 사람이 200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단 16시간으로 단축시킨 것이 석유다. 석유 한숟갈이 성인 남자 1시간의 노동량이라고 한다. 현대생활 방식은 평균적으로 노예 50명을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석유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지금 세계위기의 근본문제는 후진국의 빈곤이 아닌 선진국의 번영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기후변화는 식량수급에도 빨간불을 켰다. 현재 전 세계에 걸쳐 8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1,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 땅도 농축산물 가격의 폭등으로 더위에 지친 서민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땅의 벼 재배농가가 11년새 30% 급감하였다. 2000년 107만 가구가 2011년 75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정부는 원인을 쌀 소비량의 감소에서 찾았다. 올해 처음으로 1인당 쌀 소비량이 68.7kg으로 70kg 이하로 떨어졌다. 참 궁색스런 변병이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아 쌀을 사먹으면 된다는 정신 나간 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나라답다. 진실은 한국정부의 역대 농업정책은 살농(殺農)정책이었다. 소농을 죽이고 농지를 죽이는 식량자급의 역행이었다. 이제 그 죄값을 치를 때가 되었다.
p.s 이 리뷰는 8월초 연일 가마솥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작성되었다. 절기는 흰이슬이 내린다는 백로도 지났다. 한가위가 열흘 뒤다. 사람들은 청명한 가을하늘과 울긋불긋한 단풍을 찾아 길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