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논 - 밥 한 그릇의 始原
지은이 : 최수연
펴낸곳 : 마고북스
이 책은 사진이 단연 압권이다. 저자가 농민신문사 월간지 ‘전원생활’의 사진기자라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좋아하는 농사짓는 소설가 최용탁은 아름다운 이미지에 글힘을 보탰다. 책이 출판된 지 만 4년이 되었다. 맛있는 사탕을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혼자 먹는 아이처럼 나는 200여 쪽에 불과한 더군다나 사진이 많이 실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악양 평사리의 무딤이 들판이 서두를 장식한다. 두 번째 장은 한 배미 논의 기나긴 역사와 정감 가득한 논의 이름들이 길게 등장한다. 이 땅의 논과 벼의 역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1998년 충북 청원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1만3천여년 전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다. 1999년에 발견된 울산 남구 부거동 논은 기원전 9 ~ 10세기 청동기 시대의 논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논이다. 세 번째 장 ‘논의 한 살이’는 논두렁 태우기부터 가을걷이까지 논농사 과정을 다루고, 네 번째 장은 논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소개했다. 마지막 장은 소가 쟁기질하다 떨어졌다는 남해 가천마을, 지리산 구례 중대마을의 다랑논과 돌땅을 일구어 논을 만든 완도 청산도의 구들장 논을 이야기한다.
나는 드넓은 김포 들녘 한가운데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가난한 소농이라 나는 형제들과 어릴적부터 논일에 누구 못지않게 익숙하다. 아마! 나의 세대는 농사일이 가족농의 노동력에서 기계화로 전이되는 과정을 지켜 본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나는 모판의 모춤을 찢고 손모를 꽂고, 낮으로 벼베기를 하고 나락을 논두렁에 세워 말리고, 들에서 발동기를 돌려 탈곡을 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노동 강도에 혀를 내두르게 마련인 용궁패거리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끝은 자꾸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작은 섬 주문도에 여적 다랑논이 살아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그 다랑논 풍경을 보고 ‘한 폭의 서예 족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감탄했다. 무논에 담긴 산그림자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식량증산과 함께 보리혼식을 장려했다. 점심시간이면 선생님들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보리밥을 확인했다. 쌀과 보리의 비율을 7:3 비율로 섞어야만 했다. 껄끄러운 보리 감촉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도시락에 담겨진 점심밥의 거죽만 살짝 보리를 얹혔다. 그런데 그 귀한 쌀을 생산하는 논이 급감하고 있다. 벼 재배농가는 11년 새에 30%가 급감하여 75만 가구로 줄었다. 1인당 주식인 쌀소비량이 60kg대로 떨어지고, 10년 뒤에는 과일 소비량이 쌀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살농(殺農)정책을 펼친 이 땅의 역대정권에게 아주 좋은 핑계거리였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향후 150년 정도면 이 땅에서 논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길게 잡았다. 70세 노인들이 동네에서 막내인 시골에서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10 ~ 20년 뒤에 논은 스러질 운명에 처했다. 논은 3년만 놀리면 못 쓰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땅을 천대한 하늘의 벌인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애그플레이션이 연말에 한반도를 상륙할 것이라고 한다. agflation(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과 물가상승의 합성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전 세계의 폭염과 가뭄으로 곡물의 작황이 나빠져 식량공급을 받쳐주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땅의 식량자급율은 26.7%에 불과하다. 쌀(104.6%)를 제외하고 밀(0.8%), 옥수수(0.8%), 콩(8.7%) 등은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역대 최악의 곡물 파동이라는 태풍을 눈앞에 두고도 이 땅은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귀한 쌀을 생산할 4대강 주변의 논들에 중금속 덩어리인 강바닥을 긁어모아 적재한 것을, ‘농토의 리모델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바탕 거대한 축제를 벌였다. ‘4대강 사업’ 완공 축하쇼라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