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다산의 풍경

대빈창 2012. 10. 11. 06:39

 

 

책이름 : 다산의 풍경

지은이 : 정약용

엮은이 : 최지녀

펴낸곳 : 돌베개

 

노전(蘆田) 마을 젊은 여인 기나긴 통곡 소리/동네 어귀 향해 소리치고 하늘에 울부짖네./전쟁 간 남편이 못 돌아오는 일은 있어도/사내가 거세(去勢)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네./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이는 갓 태어났는데/시아버지 남편 아이 모두 군인 몫을 하라니/야속하여 찾아가 호소해 봐도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이장(里長)은 사납게 외양간에서 소를 끌어가네./칼을 갈아 방으로 들어가니 자리에 피가 흥건/자식 낳아 이런 고통 당하는 게 원통해 그랬다 하네./죄가 있어 거세 당한 게 아니라/출세하려 거세한 민(閩) 땅의 아들도 불쌍한데/대대로 자식을 낳는 건 하늘의 이치라서/하늘 기운은 아들 되고 땅 기운은 딸이 된다오./거세한 말 돼지도 불쌍타 할 것인데/하물며 대를 이어 갈 백성이야 어떠하랴?/잘사는 집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며/쌀 한 톨 비단 한 조각 바치잖는데/똑같은 우리 백성 어찌 그리 다른가/객창에서 ‘비둘기 시’를 외워 본다네.

 

'스스로 거세한 남자를 슬퍼함(114 ~ 115쪽)‘의 전문이다. 이 시는 원제 ‘애절양(哀絶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이 ‘목민심서’에 실려 있다. 계해년(1803년) 가을. 갈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3일만에 군포(軍布)에 올리고, 군포대신 소를 빼앗아가자, 남편은 칼을 들어 자신의 남근을 자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물건 때문에 이런 재앙을 겪는구나.”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근을 들고 관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았다. 이를 듣고 다산은 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분배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 꾼 실학자 다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애민시(愛民詩) 중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집은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다산의 시 세계를 조명하였다. 1장 경세시 - 20편, 2장 우화시 - 11편, 3장 애민시 - 14편, 4장 유배시 - 19편, 5장 서정시 - 15편, 6장 가족시 - 11편. 모두 90편이 실렸다.

조선 후기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난의 원인을 다산은 관리의 포악과 땅을 가진 토호(土豪)들의 착취, 군정(軍政)의 문란을 꼽았다. 다산은 ‘조선의 각박한 현실과 고단한 백성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234쪽)’을 읊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시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살률과 이혼율,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근로시간, 노동유연성, 산재사망자 등의 지표에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빛좋은 개살구처럼 경제지표만 화려한 이 땅은 까딱하면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낙오자의 ‘묻지마 범죄’가 백주대낮에 극성인 요즘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30%를 넘어섰다. 노동유연성이란 다만 ‘해고의 자유’일 뿐이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기업의 절반은 실제로 경영상 위기가 없었다. 172명을 정리 해고한 한진중공업은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217명의 강제퇴직과 정리해고 21명을 단행한 흥국생명의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원에 달했다. 이 땅에서 경영 실패로 경영진이 물러나고, 주주들이 자본금을 출연한 경우는 없다. 모든 기업경영의 위기는 노동자의 책임인 것이다. 경찰 특공대가 잔인하게 진압한 쌍용차 사태가 벌써 3년이 되었다. 무급 휴직자 복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조합원 및 가족 희생자가 22명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일하던 20·30대의 젊은 노동자 56명이 생목숨을 잃었다. 4대강 사업의 밤일에 내몰린 건설농동자 20명이 공사현장에서 죽었다.

다산이 탄생한 지 올해 250주년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으나 민중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나는 고작 노트북의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다산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남양주 능내리 언덕에 묻혔다.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 다산의 자찬묘지명이다. 여기서 열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한강을 살린다며 강바닥의 모레를 긁어내고, 강변을 시멘트로 도배질해 자전거길을 만든다며 두물머리 유기농 농민을 쫒아내는 작금의 사태를  다산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눈 내리고 찬바람이 일면 다산의 묘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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