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
지은이 : 박승옥
펴낸곳 : 녹색평론사
글쓴이 박승옥은 80년대부터 민주화, 노동운동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연구원으로서 민주화운동이 처한 환멸적 상황을 극복, 타개할 방안을 연구 중이다. 부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제언'이 말해주듯 식량·에너지의 자립·자치를 위한 풀뿌리 운동을 시민들이 밑에서부터 전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아니 저자는 호소, 제언이 아닌 차라리 절규하고 있다고 말해야 정당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시인 최영미의 도발적 데뷔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자연스레 떠 올렸다.
90년대 초 소비에트와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이 땅에는 사리 물때의 썰물처럼 급속하게 이념이 쓸려갔다. 80년대의 사랑과 아픔이라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도발적 시어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시집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깨어있는 맑은 영혼들이 한때나마 목숨을 걸고 지향한 이념이지 않았는가. 그 시어들은 오히려 비수로 변해 패배자(?)들의 등 뒤를 겨냥한 꼴이 되었다. 솔직한 것도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이상'이라는 짐이 무거웠던 사람들은 '잔치는 끝났다'며 가볍기 그지없는 '현실'에 안착했다. 최영미는 이상을 향한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아예 잔치에서 떠난 사람들이 안주한 판에 절체절명의 재앙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저자는 최후의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그 경고음을 거칠게나마 들어보자.
한국의 압축 경제성장을 칭송하는 지표로 국내총샌산 11위, 자동차 생산량 6위, 선박 건조량 1위, 조강 생산량 5위, 전자제품 생산액 3위, 수출액 13위, 외환 보유액 4위, 1차 에너지 총 소비량 10위, 1인당 에너지 소비량 17위, 쌀 생산량 13위, 단위 면적당 생산량 11위, 인터넷 이용자수 2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순위다. 자랑스럽고 만족스런 웃음을 짖기에는 이르다. 빛 좋은 껍데기를 벗겨 부끄러운 알맹이를 꺼내보자. 한해 자살자 1만3천명, 신용 불량자수 300만 명, 단전·단수 가구 100만, 7백만의 빈곤계층, 7가구 가운데 1가구가 직업이 없는 현실, 빈곤 자살과 생계형 범죄의 급증, 부동산 광풍,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등등.
불가사리 같은 현대판 제국주의인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 세계가 양극화되면서 수치로 20:80의 사회라고 말하지만, 한국은 1:99 사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큰일인 것은 환경지속가능성 지수는 세계 122위, 서울 대기 오염도 1위, 농업 오염도 1위, 식량 자급율은 26%로 최하위권, 국민의 상위 1%가 전 국토의 40% 이상, 상위 10%가 74%의 땅을 가지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투기놀음을 일삼아 자기 배때기만 불리고 있다. 그리고 입으로는 연일 애국, 민족이라고 쌍나팔을 불어댄다. '불편한 진실'도 두 눈 부릅뜨고 노려봐야 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계층은 대한민국 누구나가 아니라, 단 10 사람 중 1명인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제3세계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풍요를 누릴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쓰나미'가 현존 인류를 덮치려 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호모 사피엔스는 자기 종을 멸종시키고, 지구상 제6의 생명체 대멸종을 초래할 유일한 생물 종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불은 발등에 떨어졌다. 그 전조는 피크오일(석유정점)이다. 국제석유가스정점연구협회(ASPO)의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멀게 잡아 2020년으로 보고있다.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며 따라 간 산업화, 근대화가 오히려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이 따뜻했던 약 4억년 전에 만들어져 땅속 깊이 묻혀있던 석유라는 괴물을 단 1백년만에 산업시대인 오늘날 우리 인류가 물 쓰듯 써 버린 것이다. 그것이 요즘 언론매체를 도배질하고 있는 지구온난화, 기상이변이다. 농담할 기분은 아니지만, 매년 연초가 되면 장기 기상예보는 녹음기로 전락한다. 올해는 최대 기상이변이 예상된다고. 당연하지 않은가. 어마어마한 땅속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상으로 방출시켜 지구를 뜨겁게 해놓고, 기상이 정상이라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수 억년동안 잠자고 있던 화석연료를 지상에 꺼내 불태움으로써 풀려난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로 인류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뜨거워진 지구로 가뭄, 홍수, 사막화 같은 자연재해가 산업화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하고, 그 빈도는 더욱 가파르게 발생한다. 인류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위기불감증에 걸린 청맹과니가 된 것이다.
그래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대체에너지를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아는 것은 병이다. 그들이 말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에너지원 우라늄은 가채년도가 고작 50년 미만이다. 다른 천연자원 철, 아연, 구리, 텅스텐 등도 마찬가지다. 좀더 아는 사람들은 수소경제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허깨비 상식에 불과하다. 자연에 존재하지도 않는 수소를 만들려면 석유든 원자력이든 다른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 즉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조만간 닥칠 석유정점은 필연적으로 식량위기를 초래해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붕괴를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한다. 모아이 석상이라는 거석문명을 일군 태평양의 이스터 섬은 마구잡이로 숲을 파괴한 생태계 교란으로 문명에 종을 쳤다. 쿡 선장이 발견할 당시엔 식인풍습인 끔직한 카니발리즘만 번창했다. 이런 예는 인류 역사상 부지기수다. 수메르, 이집트, 마야문명 등등.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타이타닉 5분 전'의 상황이지만, 우리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의 대안은 한마디로 '환경지속가능한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이다. 가능하지도 않은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빠진 작금의 미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나,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단 한사람이라도 우리는 이런 전환을 시도해야만 한다고 절규한다. 석유라는 괴물을 끄집어 낸 산업문명은 이젠 조종을 울릴 날이 멀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배를 곯는 사람은 수백만명에 이르는 생지옥이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에너지 지원이 끊기고, 서구의 경제적 지원이 한계에 닥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 경제는 석유에 목을 메고 있었다. 반면교사로 우리는 쿠바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 같은 처지였지만, 유기농 전환으로 100% 식량자급에 성공했다. 석유 공급이 끊어지면 남한도 북한의 몰골이 될 십상이다. 아니 그 처참성은 더할 수도 있다. 북한은 식량 자급율이 75% 였지만, 현재 남한은 그 1/3 수준 밖에 안된다. 근거없는 대체에너지 낙관주의에 식량 위기라는 끔직한 재앙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성장과 진보를 향해 돌격 앞으로!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인식의 전환은 필수다. 한국농업은 '카킬'을 비롯한 세계 6대 메이저에 목줄을 움켜잡힌 꼴이다.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고, 밑으로부터 풀뿌리 자립·자치를 위한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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