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대빈창 2008. 3. 5. 20:41

 

 

책이름 : 유쾌한 하녀 마리사

지은이 : 천명관

펴낸곳 : 문학동네

 

작가 천명관하면 바로 '고래'가 연상된다. '고래'는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장편소설이다. 기존 소설의 영역을 뛰어넘어 그 경계를 확장시킨 문제작으로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고래'의 흡인력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고래'는 항간에 떠도는 온갖 기담과 민담, 영화와 무협지 등의 키치화와 대중문화의 파편들을 '이빨이 센' 작가 특유의 입심으로 새로운 소설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 받는다. 즉 아직까지의 소설 서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버린 것이다. 나는 고래를 읽으며 턱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쓰레기 잡동사니를 소재로 삼다니. 하지만 제법 부피가 두터운 소설에서, 독자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힘은 무엇일까. 당연히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졌다. 작가는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연이어 장편소설 '고래'가 활자화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설모음집을 1 ~ 2권 출간한 다음에야 장편소설에 손을 대는데, 천명관은 오히려 장편소설이 먼저 독자를 찾았고, 소설모음집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뒤를 이었다. 이 책은 등단작인 '프랭크와 나'를 비롯한 중·단편 11편이 묶여졌다.

나는 이 소설집에서 '二十歲'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60년대 생이라는 작가와의 공통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 시절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같은 동굴을 빠져나오는 통과의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드락과 헤비메탈, 깁슨과 펜더라는 전자기타 모델명, 소도시 다방의 디제이 뮤직 박스 등.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한때 미치도록 몰입했던 '레드 제플린'을 떠올렸다. '지미 페이지'가 긴 곱슬머리를 흔들며 쌍기타로 애드립의 몰아경에 빠져있고, 존 본햄은 해머로 내려치는 듯한 드러밍에 땀을 비오듯 쏟으며,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는 특유의 철판을 긁어대는 듯한 금속성으로 귀청을 찢었다. 지금도 나는 길을 걷다가 80년대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락이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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