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대빈창 2008. 3. 18. 09:29

 

 

책이름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지은이 : 디 브라운

옮긴이 : 최준석

펴낸곳 : 나무 심는 사람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부제는 '미국 인디언 멸망사'다. 하지만 이 말은 이렇게 고쳐야 정당하다. '아메리카 원주민 멸망사'로. 여기서 인디언은 인도인이라는 뜻이다. 즉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인 줄 알고 발견(?)한 신대륙의 원주민에 대한 와전된 호칭으로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본인을 '쪽바리'로, 중국인을 '되놈'으로, 일본인이 우리를 '조센징'으로, 중국인을 '짱골라'로 부르는 것과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팝송을 즐겨 들었는데 그중 한곡이 '인디언 레저베이션'으로 우리말로 '인디언 보호구역'이었다. 인디언 북소리가 연상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마을을 떠돌던 천막극장의 서부영화를 보며 선한 자(백인종의 보안관)와 악한 자(홍인종의 인디언)의 대결에서 항상 잔인무도한 인디언을 물리치는 정의와 용기를 가진 백인 보안관의 승리에 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댔다. 백인 우월주의를 넘어 백인 숭모주의에 빠진 이 땅의 불쌍한 젊은 영혼들의 통과의례 한 장면이었다. 초지일관 체제순응 교육도 모자라 노예근성만 심어주던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이 땅의 깨어있는 정신은 5·18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미국의 본질을 깨우쳤다.

앵글로 색슨족, 즉 미국인이 내세우는 프런티어(개척) 정신은 한마디로 인디언의 땅과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은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깡패 정신에 다름 아니다. 몇년 전 '녹색평론'에서 시애틀 추장의 '우리는 모두 한 형제다'라는 감동적인 연설문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700여쪽의 이 책은 인디언들의 멸망사란 다름아닌 백인의 폭력과 협잡, 원주민의 죽음과 희생으로 이룩한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추악한 이면을 여실하게 드러낸 기록문학의 걸작이다. 며칠간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심장이 튀어나오는 듯한 고통과 분노에 마른 울음을 안으로 삼켰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잔인할 수밖에 없는가.

책은 모두 19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 앞에는 당대 시대상황 연보와 대표적인 인디언 추장의 말을 인용하고, 여러 인디언 부족을 대표하는 추장의 사진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씻이를 하고나자 백인들의 인간과 동물, 생명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가 바로, 우리가 현재 처한 인류 최대 문제인 환경 파괴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지 또렷이 보여준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신을 믿는 그들의 행태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운디니드 학살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죽어가던 인디언들의 눈에는 백인들의 종교(신)의 가증스런 위선이 보였을 것이다. 1890년 크리스마스가 나흘 지난날, 찢기고 피 흘리는 인디언 부상자들이 예배당 앞마당에 옮겨졌다. 그나마 의식이 남아있는 인디언의 눈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설교단 합창대석 위의 엉성한 글씨체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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