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도에 삶터를 내려놓은 지 7년이 넘어섰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아침, 저녁으로 짧은 순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순례는 폭우나 폭설 등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두 다리가 움직이는 한 지속될 것입니다. 저는 여섯 시에 일어납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바로 봉구산 숲속으로 들어섭니다. 산정에서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며 서도 군도(群島)를 부감합니다. 사시사철 바뀌는 물때와 갯벌, 점점이 떠있는 무인도들, 섬들 사이 바다에 떠있는 어선들. 계절이 깊어 가면서 색이 변하는 들녘에 눈길을 주고 산을 내려옵니다. 해가 늦은 겨울에는 일곱 시에 산에 듭니다. 저녁 여섯 시. 밥을 먹자마자 등산화 끈을 조입니다. 저녁 순례입니다. 들녘을 가로질러 대빈창 해변을 향하다가 봉구산자락으로 접어듭니다. 봉구산의 옆구리를 따라 집으로 거슬러 돌아오는 산책입니다. 아침의 산에 드는 순례나, 저녁의 산책은 대략 30분 정도 걸립니다.
광복절 어두운 새벽부터 들입다 퍼붓기 시작한 폭우는 작은 섬 주문도에 200mm를 쏟아 부었습니다. 저는 아침 순례를 나설 수 없었습니다. 습기 먹은 대기의 눅눅한 무더위를 피해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녁 산책에 나섰습니다. 대빈창 해변을 향하다 봉구산 자락의 갓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옛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었습니다. 숲은 스펀지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던 엄청난 빗물을 흡수했다가 천천히 내뱉고 있었습니다. 포도를 투명한 막이 한 겹 덮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사진 곳은 투명한 막이 얇은 주름을 만들며 흘러 내렸습니다. 그때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을 앞질러 얇은 한 겹 물 위를 무엇인가 재빠르게 미끄러져 움직였습니다. 몰려다니는 놈들의 움직임은 전광석화 같았습니다. 아! 소금쟁이들이었습니다. 소금쟁이는 계곡이나 저수지, 연못, 하천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흔하게 발견되는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섬 생활을 하면서 녀석들은 처음이었습니다. 불현듯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 포도를 따라 흐르는 한 겹 얇은 물위에서 녀석들은 스케이트를 타듯이 미끄러지고 있었습니다. 하긴 소금쟁이는 영어로 ‘water strider'입니다. 녀석들은 발끝에 있는 기름샘과 방수털로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활짝 벌려 체중을 분산시키고 표면장력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저는 물이 미치지 못한 지점으로 발걸음을 크게 떼어 놓았습니다. 녀석들은 어디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요. 다음날 저녁 산책. 물이 마른 갓길에 녀석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금쟁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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