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꽃 핀 건/자주 감자/파보나마나/자주 감자/하얀꽃 핀 건/하얀 감자/파보나마나/하얀 감자
독립운동가 권태응의 ‘감자꽃’ 노랫말입니다. 오래전에 나는 충주 탄금대 공원 한편에 서있던 시비를 보았습니다. 일제 암흑기에 민족의식을 고양시킨 노래지만, 가사는 식물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식물은 생장하면서 자기색을 현현합니다. 열매색과 잎색은 상응합니다. 감자는 꽃색으로 우리가 식용하는 덩이줄기의 색을 알 수 있습니다. 강화도가 자랑하는 속노랑고구마는 잎색으로 일반 고구마와 구별됩니다. 속노랑고구마의 잎사귀 반 정도는 자주색입니다. 밤고구마는 녹색잎 뿐입니다. 위 이미지의 벼 잎색이 검게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콤바인으로 베는 벼는 흑미로 품종 이름은 흑진주입니다. 사진은 작년에 찍었습니다. 이제 희귀품종인 흑진주는 주문도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제가 주문도에 처음 왔을 때 유달리 빨리 베는 벼가 있었습니다. 극조생종 입니다. 어르신네에게 이름을 물으니, ‘흑미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찰벼 계통은 아니었습니다. 수확량은 형편없었습니다. 재배 연유를 물으니, 당신의 쌀을 사는 도시소비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꾸러미로 선물을 하신답니다. 작은 논배미에 심겨진 특수미로 고명쌀 이었습니다. 밥을 하면서 한 움큼 앉히면 밥색깔이 보기 좋습니다. 몇 년 전 벼를 수확하면서 일반벼가 섞여 종자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국립식량과학원 철원출장소’를 통해 계통육종법으로 선별된 양질의 종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름도 그럴듯하게 ‘흑진주’라고 붙여져 있었습니다.
주문도의 첫 벼베기는 '흑진주'일 수밖에 없습니다. 들녘에 나갔습니다. 콤바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흑진주를 재배하시던 어르신네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힘이 부처 논을 내놓았습니다. 논은 기계영농하는 젊은이들이 도지를 부칩니다. 그들에게 흑진주는 돈이 되질 않는 수확량이 뒤떨어지는 품종일 뿐입니다. 수확량이 많은 일반벼가 논배미에 들어앉았습니다. 마음이 담겨진 고명쌀 흑진주는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섬에 흑진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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