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일자가 왼편 사진은 5월 18일이고, 오른편 사진은 10월 4일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이미지의 나무를 금방 아실 것입니다. 으름입니다. 저도 으름 꽃을 처음 접합니다. 엄지손톱만한 보라색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신비롭습니다. 으름 꽃을 찍으며 내심 저는 가을에 열매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입안에 침이 고였습니다. 꽃을 피운 으름 덩굴은 제가 마을로 향하는 오솔길 옆 자두나무와 어울린 덩굴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휘몰아친 태풍 볼레반 때문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저는 봉구산 숲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숲속은 으름덩굴 천지입니다. 어르신네들이 산너머 마을을 오가실 때 이용하던 봉구산자락 산허리에 걸쳐진 옛길의 나무들을 으름덩굴이 덮씌웠습니다. 산길은 으름덩굴 터널이었습니다. 그런데 으름 열매는 사람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높은 곳에 매달렸습니다. 으름 열매의 씨는 새들이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들짐승은 엄두도 못 낼 높이에 열매가 매달렸습니다. 날짐승만이 으름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으름 열매는 바나나와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노란바나나가 아닌 몽키 바나나라고 하는 작은 바나나와 같습니다. 하얀 으름 열매는 익으면서 껍질이 갈색으로 변해 갑니다. 그리고 열매의 배가 열리면서 과육이 드러납니다. 검은 씨가 촘촘하게 박힌 흰 과육은 달짝지근하면서 부드럽습니다. 어렸을 적 산골아이들의 요긴한 군것질 감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나나는 가장 값싸고 흔한 과일로 지천에 널렸습니다. 바람 쐬러 나오신 시골 할머니들도 군입거리로 바나나를 드실 정도입니다. 제가 바나나를 처음 맛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큰형이 직장을 잡고 첫 봉급으로 가족들에게 귀한 바나나를 사 왔습니다. 처음 본 바나나는 야구 글러브 같고 거인의 장갑 같았습니다. 알맹이를 다 먹은 아쉬움에 껍질에 붙은 속껍질도 이로 갉아먹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무튼 그 시절 바나나는 최고급 과일이었습니다. 산업화, 근대화가 지구 구석구석 오지까지 들이닥친 오늘날을 세계화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주위에 널린 열대과일 바나나에서 글로벌화를 실감합니다. 열대과일 바나나가 흔해지면서 토종과일 으름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덧처마를 받친 기둥 밑에 청미래 덩굴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새끼 으름덩굴 한 뿌리를 묻었습니다. 으름은 덩굴식물이라 감고 올라 갈 지주대가 필요합니다. 으름 잎은 아주 보기 좋습니다. 길쭉한 다섯 장의 잎이 손가락을 편 듯 원을 그리며 모여 달립니다. 으름은 기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추위에도 강하고 성장이 빠릅니다. 몇 년 뒤 뒤뜰 화단의 덧처마에 걸린 으름덩굴 커튼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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