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아차도에 쌍무지개가 뜨다

대빈창 2012. 11. 12. 06:15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 혼자 깨어나 허둥거리며 가방을 챙겨 등굣길에 나섰는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동무들이 보이지 않고, 그때서야 해가 기울어가는 때임을 알아차린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올 가을은 추적추적 비가 잦습니다. 그날 볼음도 일을 마치고 일찌감치 선창으로 나왔습니다. 외포리에서 이제 막 배가 뜬 시간이었습니다. 한시간 여 시간이 남았습니다. 줄금줄금 빗줄기가 차츰 굵어지고 있었습니다. 매표소안 의자에 길게 누워 읽던 책을 펼쳤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나 봅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멀리 석모도 보문사 앞바다에 여객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먹구름이 급하게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무지개가 한 발을 아차도 앞바다에 걸쳤습니다. 저의 눈길은 자연스레 무지개의 반원을 따라 갑니다. 무지개의 다른 기둥은 삼산면 서검도·미법도 앞바다에 서 있습니다. 서검도와 아차도는 행정구역상 삼산면과 서도면으로 갈렸습니다.

하지만 서해가 형성되기 전 서검도와 아차도는 하나의 산줄기 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검색합니다. 서해는 면적 40만4,000㎢, 길이가 남북 1,000㎞이고, 동서는 700㎞의 넓이입니다. 수심은 20 ~ 80m 정도로 최대수심 103m이고 평균수심 44m입니다. 황하(黃河)에 의해 운반된 황토로 바닷물이 항상 누렇게 흐려 있어 황해라고도 부릅니다. 서해는 신생대 제4기 최후 빙하기 때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이상 낮아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탄지형 이었습니다. 해빙기가 도래하면서 차츰 해수면이 높아져 바다가 되었습니다. 신생대 제4기는 홍적세(1만 ~ 160만년 전)와 충적세(현재 ~ 1만년전)로 구분됩니다. 빙하시대는 지구 전역에 걸쳐 기후가 반복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기후와 환경의 격렬한 변화는 빠른 속도로 생물의 진화와 멸종을 야기 시켰습니다. 포유류가 가장 심하면서 인류 진화의 다양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서해의 섬들은 빙하기 때 평탄 지형에 돌출된 산줄기였습니다. 삼산면의 미법도, 서검도와 서도의 말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그리고 수많은 무인도들은 같은 산줄기로 봉우리였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계곡과 낮은 지역은 바닷물에 잠기고, 봉우리만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섬으로 고립되었습니다.

바다 가운데 고립된 작은 외딴 섬들의 어부들은 군홧발 정권의 독재자들에게 정권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창출의 먹이감이었습니다. 1965년 10월 29일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어민 100여명이 북한 경비선에 의해 강제 납북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미법도 주민들이었습니다. 그해 11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어민들은 아무 탈없이 귀환했습니다. 하지만 미법도 비극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1976년 미법도에 공안 사건의 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서해의 작은 섬 미법도에 모두 5건의 간첩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졌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미법도의 예비군 소대장 정영씨 집에 찾아 들었습니다. 정영씨의 부인 황문자씨는 부녀회장이었습니다. 이근안은 파렴치하게 정영씨 집에서 먹고 자면서 미법도 주민들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했습니다. 1982년 서울 남산 대공분실로 붙들려 간 정영씨는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부인 황문자씨도 끌려와 고문을 당하자 정영씨는 스스로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지금 미법도는 노인네 몇 가구가 남아 농사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미법도에 절이 들었습니다. 고문기술자가 목사안수 받는 이 땅에서 교회가 아닌 절이 섬에 들어섰다는 것이 제게는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미법도와 서검도 사이 작은 무인도의 이름이 ‘괴뢰섬’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섬사람들에게 말이 전해 내려 옵니다. “예전 저기 섬들은 고정간첩 소굴이었다며” 그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앞바다에 어쩌자고 저리 장엄하고 화려한 무지개가 떠 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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