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슬픈 미나마타

대빈창 2013. 1. 21. 06:49

 

 

책이름 : 슬픈 미나마타

지은이 : 이시무레 미치코

옮긴이 : 김경인

펴낸곳 : 달팽이

 

책장의 녹색평론을 모두 끄집어냈다. 어! 그런데 없다. 30권의 서평에 실린 글들을 하나하나 뒤적여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 보았을까. 분명 녹색평론에 실린 책에 대한 소개를 읽고 구입했는데. 문학비평에도, 연재 글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찾았다. 통권 114호. 녹색평론 2010년 9 - 10월호를 여는 글 김종철의 ‘대지(大地)로 회귀하는 문학’이었다.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나 좌절을 경험하면 의식이 굉장히 날카로워집니다. 괴로움이 깊을수록 의식은 극한적인 한계까지 가닿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그 극한에서 오히려 사람은 굉장히 풍요로운 생명감각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 생명감각, 생의 근원적인 행복과 풍요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생생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2쪽)'  이 구절로 나는 ‘슬픈 미나마타’를 손에 넣었다. 겉표지를 유심히 바라본다. 엷은 쑥색 바탕에 파란 알갱이들이 침잠되고 있다. 당연히 일본 규슈 시라누이해 바닷물에 가라앉는 유기수은 알갱이들로 보였다. 그리고 숭어로 보이는 물고기가 등지느러미를 물밖에 내놓고 몸뚱어리의 반쯤은 물속에 잠겼다. 죽은 물고기는 이렇게 떠 있을 수가 없다. 물 위에 옆으로 뉘거나,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떠 있다. 유기수은에 중독된 숭어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1953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처음 발생한 미나마타병을 소설화한 기록소설이다. 평범하고 가난한 주부였던 이시무레 미치코가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소설로 원제는 고해정토(苦海淨土)다. 전대미문의 환경재앙, 미나마타병은 신일본질소공장이 시라누이해에 폐수로 흘려보낸 유기수은 중독에서 비롯되었다. 유기수은이 축적된 어패류를 먹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사람들이 미나마타병에 걸렸다. 먼저 고양이가 코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괴상한 춤을 추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이 꼬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참한 몰골로 죽어 나갔다. ‘아이들과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 논도 흙탕물 튀는 길도 빛나는 파도도 굳어버리고(20쪽)’ 있었다. 홀로 야구 연습하는 열여섯살 소년 큐헤이, 후처로 시집왔으나 미나마타병에 걸려 이혼 당하는 사카가미 유키, 아빠는 미나마타병에 걸리고, 어미는 도망 가 할아버지가 힘들게 키우는 태아성 미나마타병의 어린 모쿠타로, 너무 아름답지만 우유 먹는 인형이 된 열일곱 꽃 처녀 유리 등. 이 소설에는 뒤틀린 사지와 보이지 않는 눈과 벌린 입으로 말이 안 나오고 침만 흘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처참한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등장한다. 환자들은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로 산업화의 희생양이었다. 작가는 근대산업문명의 폭력성을 서두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보다 복잡한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의 지배를 말하는 것’ 이라고.

규슈 미나마타만에 신일본질소공장의 메틸수은이 섞인 폐수가 흘려보내지기 시작한 것이 1932년 5월이었다. 80년이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수만명에 이른 ‘미나마타병’은 현재진행형이다. 소송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산업문명의 치부인 미나마타병은 현해탄을 건너 이 땅으로 번졌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금수강산을 작살내고, 녹색성장이라 발뺌하는 4대강 사업, 56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삼성 반도체공장의 산업재해, 간척으로 일군 들녘을 강제로 빼앗아 미군기지로 헌납한 평택 대추리,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된 자연유산이라 떠들어놓고 해군기지를 짓느라 구럼비 통바위를 폭파한 제주 강정마을, 엄동설한에 크레인에 올라 투쟁할 수밖에 없는 현대판 산업노예 비정규직, 재개발에 방해가 된다고 불에 타죽은 용산참사 철거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