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남해 금산
지은이 : 이성복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1980년 ; 自序, 43편, 황동규 - 幸福없이 사는 훈련 ; 카프카, 니체, 보들레르적
남해 금산 ; 1986년 ; 自序, 76편, 김현 - 치욕의 시적 변증 ; 김소월, 한용운, 논어와 주역
80년대는 사회정치적으로 혁명의 시대이면서 문학적으로 시의 시대였다. 시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서른 전에 상재됐다. 80년 광주사태가 터진 1980년이었다. 그리고 87년 국민대항쟁 1년전,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이 나왔다. 국내 시인들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다음으로 다섯 번째로, 생존 시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시인. 한국어의 가장 아름다운 시적 성취 운운하는 시인의 시집을 나는 30여년이 지나서야 손에 잡았다. 그 시절 나에게 시란 배부른 자들의 음풍농월이었다.
노가다 시인 유용주는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에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잡으면서 앓았던 열병을 토로했다. 뒹구는 돌에서 나는 믹 재거의 반항적 보컬에 매료되었던 롤링 스톤즈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79년과 80년. 질풍노도의 시절을 나는 헤비메탈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때는 총통제를 노리던 군홧발 출신의 독재자가 부하의 총탄에 비명횡사하고 짧은 민주화의 봄과 광주가 피로 물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90년대 중반,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 열풍이 일고 있었다. 짬만 나면 나는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깊은 미련이 남아있는 아직 나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한 섬이 있다. 남해도다. 우리나라의 섬 중 크기로 따져 강화도와 서로 네 번째라고 내세우는 섬이다. 나는 언제가 국토지리연구원에 궁금증을 물었다. 강화도의 간척 사업이 계속되면서 섬 크기로 네 번째라고 일러 주었다.
남해도는 볼 것이 많은 섬이다. 원시적 고기잡이 죽방렴에서 잡은 고기를 물건리 방조어부림 그늘에 앉아 물비늘이 자글거리는 바다를 보며 맛보고 싶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천마을 다랑이논과 수미륵과 암미륵을 모신 암수바위의 성신앙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양양의 낙산사와 강화도의 보문사와 함께 3대관음도량으로 꼽히는 남해도 금산의 보리암. 이성계가 이름을 지었다는 조선 개국과 연관이 있는 금산. 주문도의 봉구산. 그 자락에 나의 집이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숲길로 산책을 나서면서 인문학자 강판권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사전의 저자다. 시인과 같은 대학에 몸담고 있다. 2007년 시인에게 현대문학상을 안겨 준 시는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 나무인간 강판권’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두 권의 시집이 손에 잡혔다. 그리고 나는 120편의 시를 읽었다.
시인의 첫 시집 표제는 ‘모래내·1978년’의 한 구절이다.
우연히 스치는 질문 ― 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58쪽)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의 표제작은 군말하면 잔소리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