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대한민국 史 - 3(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대빈창 2013. 1. 4. 07:00

 

 

책이름 : 대한민국 史 - 3(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지은이 : 한홍구

펴낸곳 : 한겨레출판

 

“남자 열 명도 너끈하게 이겨내는 여장부지”

“그럼, 쫄딱 망한 한나라당을 몇 번이나 일으켜 세웠잖아”

“박근혜가 되어야지, 민주당이 되면 또 북한에다 마구 퍼 줄거야”

“빨갱이 새끼들이 되면 이북에다 다 퍼줘, 우리가 굶는데도···”

"요망한 년, 주둥이 놀리는 것 좀 봐"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는 데. 길을 잘못 들었어. 아깝지."

 

18대 대선일. 서해의 작은 외딴 섬의 후줄그레한 몰골의 촌로들의 몇 마디 대화다. 영하의 엄동설한인데도 섬의 투표율은 80%가 넘었다. 혼자 힘으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네들이 기를 쓰고 투표장에 나와 한 표를 던졌다. 가미가제 특공대 못지 않은 결기를 보였다. 역시나. 뚜껑을 열자, 여당 여성후보가 압도적인 몰표를 받았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대일본제국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고 애도한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친일과 반공이 보수를 목졸라 죽인 이 땅. 그동안 수구는 낯짝을 가리고 보수라고 극구 우겨댔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옛 기억을 추스르며 자신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92년 안산 화공약품 공장에서 구로 문래동 마찌꼬바로 적을 옮겼다. 밀링과 선반 숙련공을 꿈꾸면서 가리봉동 벌통방에 짐을 풀었다. 선이 연결되었다. 3 ~ 4명의 노동자가 도제식으로 일하는 영세 철공소 500여개가 밀집된 이곳에 최초로 지역노조를 건설하려는 일군의 활동가들이었다. 별빛마저 숨어버린 한겨울 차가운 맞바람을 거스르며 미로 같은 골목길 언덕을 올랐다. 지역 활동가의 단칸방. 그들은 마찌꼬바 밀집지역 지역노조를 건설하려는 투쟁에 함께 할 것을 나에게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책꽂이에 빼곡하게 자리잡은 ’새벽‘ 때문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간첩단 ’중부지역당‘ 사건이 터졌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92년 14대 총선에서 민중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지지율 1%로 정당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 남았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민중당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민자당에 입당했다.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정태윤 등. 역사적으로 아주 못쓰게 망가진 인물들 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서해의 외딴 섬에 흘러 들어왔다. 10여명이 모인 어느 술자리.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고참 경찰이 판을 깨뜨렸다. 삿대질을 하며 막무가내로 나에게 쌍욕을 내뱉었다.

“○ 같은 새끼야. 니가 노동운동을 했어. 내가 왕년에 대공분실에서 니런 놈들 몇 놈은 죽였어”

참! 불쌍한 인간이었다. 뒤돌아 생각하니, 몇 달 전 제대를 얼마 앞둔 문학도가 전경으로 외딴 섬에 전출을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섬 유일의 선창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같이했다. 그때 고참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문학에서 사회의식으로 더불어 이 땅의 노동자가 처해 있는 현실로 얘기가 번졌다. 말없이 술잔만 들던 고참이 뭐가 못 마땅한 지 자리를 털고 먼저 일어났다. 그렇다. 이것이 이 땅의 수준이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가 운동단체에 지천명을 넘기고도 후원을 하는 것은 사상과 이념 때문이 아니다. 다리가 부러졌다는 핑계로 혼자 살겠다고 현장을 빠져나왔다는  마음의 빚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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