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

대빈창 2013. 2. 7. 06:56

 

 

책이름 : 교양으로 읽는 건축

지은이 : 임석재

펴낸곳 : 인물과사상사

 

초고층 아파트, 뉴 타운, 산동네, 재개발, 철거민, 부동산 투기, 복덕방, 복부인, 강남 유한마담, 용산참사, 전철역 찌라시 아줌마 부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건축하면 내 머릿속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이 땅 보통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서 건축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불리는 재테크이지 예술(25쪽)'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천박한 건축만이 난무하게 되었을까. 군부독재의 압축적 근대기의 건축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 시절의 건축은 공사 자금을 부풀려 검은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삭막한 단순육면체 건물을 빨리빨리 양산하여 과시행정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여기서 단순육면체는 ‘주어진 건축적 조건 아래에서 가장 싸고 가장 빠르고 가장 넓게 짓는 방법으로 건폐율과 용적율을 가능한 한 꽉 채워 찾아 먹는 방법(178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남 개발의 막대한 이익을 권력자들이 착복하는 것을 배운 국민들은 건축을 다만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고 부동산 투기만 과열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동네 사람들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아파트값 올리기에 혈안이 되었다. 현재 이 땅의 주택 1,322만채 가운데 52.7%인 696만채가 아파트다.

그렇다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이후, 이 땅의 건축은 어떤 모습을 드러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본권력에의 봉사는 노예 수준으로 전락(82쪽)’ 했다. 토건업이 국민총생산의 25%을 차지하는 이 땅은 아주 질이 나쁜 토건국가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학도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대형건설사무소에 취업하여 100%가 아파트, 주상복합, 백화점, 대형 상가, 대형마트, 오피스 빌딩 등 도면쟁이로 추락하고 만다. 가우디를 꿈꾼 청춘들이 표절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파주 출판단지를 건축의 예술작품으로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예로 언급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건축 잡지인 월간지 엘 크로키(El Croquis)를 열권 정도 들추면 90% 이상의 모방된 원작품을 골라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건축의 낯 뜨거운 현실이다.

서울 잠실에 높이 600m, 130층의 초고층 제2 롯데월드를 짓는다고 말이 많다. 작가 이문열도 세계에 서울을 내세울 수 있는 건물에 희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정곡을 찌른다. 초고층 건물 높이에 목을 매다는 국가는 졸부나라로 개발도상국들이다. 이면에는 부동산 졸부가 겉치레를 위해 허장성세를 부리는 보상심리가 깔려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수평선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조화미를 개발하는 ‘수평선의 미학’을 추구하는 성숙미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르 코르뷔지에,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 로에. 20세기 초 3대 거장 건축가는 모두 사회주의자였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이 가져 올 인간성 상실을 우려했다. 그런데 이 땅에는 건축가는 없고 사장님만 우글우글 거린다. 나에게 지은이는 건축가보다 문명비평가에 방점을 찍게 만들었다. 부리나케 저자의 또 다른 책 ‘건축, 우리의 자화상’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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