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학교 없는 사회
지은이 : 이반 일리치
옮긴이 : 박홍규
펴낸곳 : 생각의 나무
우린 교육 따윈 필요 없어요
우린 사고를 조종당할 필요도 없어요
교실에서의 혹독한 조롱도 필요 없어요
선생님,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세요
선생님,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라고요
우린 그냥 벽 속의 벽돌일 뿐이라구요
우린 그냥 벽 속의 또 다른 벽돌일 뿐이라구요.
아이들이 합창으로 노래한 가사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동영상을 열 번도 더 보았다. 나의 젊은 시절 한때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 장르의 전형을 세운 전설적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 더블앨범 ‘The Wall'를 발표하자 세계는 경악했다. 컨셉 앨범이었던 이 음반에서 part Ⅱ에 담긴 곡이 가장 탁월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줄로 서서 거대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온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로테스크한 마스크를 쓴 채 책상 위에 앉아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옮겨졌다. 아이들이 다시 줄지어서 지휘봉을 든 선생의 지시에 따라 거대한 기계가 가동되는 공장으로 향했다. 화면은 바뀌고 가면을 쓴 학생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와 한명씩 탱크 속으로 떨어졌다. 탱크 하단의 파이프에서 소시지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핑크는 Pink Floyd의 리더인 사회주의자 ‘로저 워터스’의 자전적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그 시절 이 땅은 광주에서 수천명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당연히 이 앨범과 1982년에 나온 영화는 금지되었다.
이 땅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 좋은 기억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술 시간이 있는 날이면 그날 학교 수업을 빼먹고 산치기를 했다. 또래들과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레슬링, 딱지치기 등 하루를 때우고 하교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왔다. 재료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집안 사정을 아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손을 못 벌리고, 학교가면 선생에게 혼이 나고, 궁여지책으로 작은 머리에서 나온 땡땡이였다. 때 검사 시간, 체육선생이 목덜미에 침을 뱉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즈음이며 실시된 연례행사였다. 읍내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네들은 목욕탕이 있었다. 허술한 바람벽을 드나드는 황소바람에 추위에 떨며 한겨울을 보낸 촌놈들. 손과 발은 동상에 걸렸고, 묵은 때가 시커멓게 온 몸을 덮었다. 목욕이라니.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그때 선생들은 걸핏하면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고교 시절은 아예 교련복이 교복을 대신했다. 교련선생은 재미로 옆구리 살을 비틀었고, 고문관인 나는 사열대에 올라가 목총으로 16개 동작 시범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나는 교련선생을 죽이고 싶었다. 어느날 학교를 파하고 친구네 집 구멍가게에서 신제품 스넥인 ‘인디언 밥’을 입안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때 교련선생이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렀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다음날 선생은 수업시간에 고교생이 과자를 먹는다고, 정신연령을 탓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칼을 준비하고 선생의 사택 골목길의 어둠속에 숨어 있었다. 다행히 술을 좋아하던 선생은 밤이 이슥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나의 어린 시절보다 학교생활이 더 고통스럽다. 졸업 후 전망이 없어 휴학한 대학생들이 100만을 넘어섰다. 초중고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한 해 160명에 이르렀다. 입시지옥 이 땅의 아이들은 놀 줄도 모르게 되었다. 노래방이나 PC방가서 담배피고 술 먹고, 싸움하고 섹스하는 것이 전부다. 갈 데까지 간 이 땅의 한심한 교육현장의 몰골이었다. 이반 일리히는 단적으로 갈파한다. 가장 교활한 것이 학교라고. ‘고속도로망은 자동차의 수요만은 만들어내지만, 학교는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 몰려 있는 현대 제도 전체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125쪽)’고. 단지 학교는 자본의 이익을 올리기 위한 노동자를 육성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특히 교육은 없고 입시만 날뛰는 이 땅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