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연암을 읽는다

대빈창 2013. 2. 20. 07:00

 

 

책이름 : 연암을 읽는다

지은이 : 박희병

펴낸곳 : 돌베개

 

생각지 못하게 좋은 책을 만났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대여한 책이다. 다산의 책 몇 권을 접하고, 실학의 현실인식에 눈을 떠가고 있었나보다. 그때 이 책이 눈에 뜨였다. 연암의 또 다른 산문집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를 점찍었는데 그새 누군가의 손을 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다. 이 책은 꽤나 부피가 두껍다. 하지만 역자는 같은 박희병 이다. 눈에 익다. 오래전 창비에서 나온 ‘선인들의 공부법’을 잡았었다.

‘요즘 문풍文風이 이렇게 된 것은 그 근본을 따져 보면 모두 박지원의 죄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꾀하면서 한 말이다. 여기서 문체반정이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을 검색한다. 조선 후기 박지원(1727 ~1805)을 비롯한 진보적 문인들은 전통적인 문체를 벗어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를 구사하였는데 열하일기(熱河日記)가 당시 문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정조가 명청(明淸)소설의 수입을 금지하고, 연암에게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글을 지어 바치게 한 사건을 말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연암의 글은 생동하는 언어의 파격적인 문체로 당시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연암을 이렇게 자랑스러워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이러하니 연암에 대한 애정이 이 책의 구성에 잘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연암의 뛰어난 산문 중 20편을 선별하여 정독했다. 정독을 위해서 저자는 주해, 평설, 총평으로 구분해 세밀한 접근을 시도한다. 구성은 작품 전문을 선보이고, 단락별로 쪼개 세밀하게 음미한다. 그리고 ‘주해’을 통해 단락마다 인명·지명·용어를 설명한다. ‘평설’에서는 글 내용을 분석하고, 글의 배경을 밝히고, 연암의 생각을 추측한다. ‘총평’에서 저자의 작품에 대한 총평과 선인의 평론을 함께 실었다.

연암은 반골기질이 대단했다. ‘입으로는 온갖 그럴듯한 말, 고상한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뒤로는 추악하고 야비하며 위선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사대부들의 자기기만(180쪽)’에 진절머리를 쳤다. 그러기에 연암은 죽음을 앞두고 쓴 글에서 자신의 생애를 이렇게 말했다. “냄새 나는 똥주머니로 예순아홉 해를 산 조선의 ‘삼류 선비’”라고. 연암은 16세까지 글을 못 지었다. 그 시절 양반사회에서 요구했던 독서량에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장가를 들자, 처가댁에서 ‘무식한 사위’에 깜짝 놀랐다. 역설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연암의 어린 시절이 교조화된 성리학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잡고 나는 연암의 문체에 반했다. ‘발가락이 닮았다’다. 억지로 연암과의 인연을 찾는다. 이 책에 나의 고향인 통진(通津)이 두 번 등장한다.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에서 연암은 새벽에 봉상촌에서 문수산성을 거쳐 강화로 가는 길에 무지개를 본 소감을 적은 글이다. 여기서 ‘봉상촌’은 통진의 한 고을 이름이다. ‘형수님 묘지명’에 통진에 있던 농장의 방죽이 해일로 무너져 다시 쌓으려다 경기도 관찰사인 할아버지의 명으로 중지시킨 일을 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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