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배 생각
지은이 : 안상학
펴낸곳 : 애지
뻔질나게 돌아다니며/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어쩌다 집에 가면/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아,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표제시 ‘아배 생각(18 ~ 19쪽)’의 전문이다. 여기서 아배는 영남 내륙 지방의 방언으로 아버지를 지칭한다. 데면데면한 부자간에 오가던 말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 시집에는 3부에 나뉘어 59 시편이 실렸다. ‘시인의 말’까지 합하면 꼭 60개다. 시집은 시인의 아버지의 10주기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1부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뭉클한 그리움과 함께 먼저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주조를 이룬 시들이 실렸다.
그렇다. 나의 아버지도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벌써 5년이 되었다. 논 한배미를 빼면 아버지를 묻을 땅 한 조각 없었다. 아버지를 화장했다. 하지만 유골을 어딘가에 뿌리기에 너무 허전했다. 남몰래 아버지 유골을 지금 살고 있는 섬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산중 나무 둥치에 묻었다. 1년 반 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섬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해 봄 밭가에 한 그루의 모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장하고 작은 비석을 세웠다. 몇 해가 지나자 ‘자연장’이 생겼다. 아버지는 이 땅에서 최초로 자연장으로 묻혔을 것이다. 올 겨울은 눈이 많다. 아버지는 지금 모과나무 밑에서 두터운 눈이불을 쓰고 겨울을 나고 계시다.
시인을 처음 접한 것이 유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잡고서다. 나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을 후원했다. 시인이 재단의 사무국장이었다. 그리고 3부에 실린 시편들을 읽어나가다 '김완석', '인도양', '수평선은 없다', '인도양 물봉우리에서','푸른 사과 한 알', '사막의 길'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그렇다. 에세이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의 공저자는 시인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작가 한창훈이다. 이들은 2010년 한 배를 타고 스무하루 간 부산에서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라비아 두바이까지 바다를 여행했다. 위의 시들은 그 여행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이었다. 그들이 탄 배는 현대상선 하이웨이호로 선장 김완석은 시인 안상학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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