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소립자
지은이 : 미셸 우엘벡
옮긴이 : 이세욱
펴낸곳 : 열린책들
나는 블로그 초보다. 글을 올린 지 3년이 채 못되었다. 미숙한 리뷰나마 포스팅을 하게 용기를 북돋아 준 두 여성에게 빚을 지고 있다. 두 분의 블로그에서 온라인이지만 자기 글에 대한 책임과 글의 깊이와 넓이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야매댄서와 빛마루님이다. 이 책은 전적으로 야매댄서님의 추천으로 손에 잡았다. 블로그 활동 초창기, 나의 리뷰에 달린 댄서님의 댓글의 일부다.
“프랑스 소설가 중에 미셸 우엘벡이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제가 근 10년을 통틀어 제일 감동적으로 읽은 <소립자>의 작가면서 스스로를 '우울한 우파'라고 칭하는 사람이죠.”
아쉽게도 댄서님은 지금 휴식중이다. 게으른 나는 책을 손에 넣은 지 1년여를 딴 짓을 하다 이제야 책씻이를 했다. 그동안 댄서님은 블로그 활동을 쉬었다. 얼마 전 반갑게도 댓글을 올렸다. 블로그를 방치할 수 없어 비공개로 전환한다는 인사였다. 아쉽기 그지없다.
‘올 가을의 파리 사람들은 우엘벡을 지지하는 사람 아니면 반대하는 사람이다’라고. ‘뉴요커’의 파리 특파원은 전했다. 1998년 출간된 이 소설이 일으킨 센세이션은 대단했다. 뉴욕 타임스는 ‘카뮈 이래 프랑스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라고 말 많고 탈 많은 이 소설에 대한 전 세계의 반응을 요약했다. 이 소설은 배다른 형제 브뤼노와 미셀의 황폐한 삶과 끝없는 절망을 그려냈다. 작가는 글에서 ‘68세대’를 조롱하고, ‘하드 코어’적인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68세대는 젊음과 혁명의 상징으로 자유·평등·해방을 외쳤던 오늘날의 서구 사회 정신문화의 근간이지 않은가. 작가는 ‘자멸해 가는 서구’의 뿌리는 바로 68세대의 개인주의적인 천함과 비열함이라고 쏘아 붙였다. 그리고 성적인 해방은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포르노만 지천으로 널린 막장이 되었다고 사갈시했다. 여기서 독자는 섹스중독자 브뤼노를 한낮 개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 80년대 초반, 학살자 전두환이 권력을 찬탈하고, 민중 우매화 정책으로 3S 정책을 추구했다고 지식인들은 비판했다. 여기서 3S란 Sex, Sports, Screen 이었다. 그때 화염병을 던지던 청년들은 중년이 되었다. 그들은 아이돌 여성그룹의 섹시미에 삼촌 부대를 자처하며 관음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의 자식들 꿈은 온통 아이돌이 되는 것으로 획일화됐다. 90년대 초반. 철공소 영세업체. 선반 숙련공이었던 20대 후반의 살결이 희고 눈매가 가늘었던 청년이 수컷의 고통을 이렇게 털어놨다.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 창녀가 돼서 원 없이 섹스를 할 텐데. 이 꼴이 뭐람. 구멍가게에서 기름밥이나 먹고 있으니.”
그는 그 시절 이 땅에서 노동을 팔아 쌀을 산 성실했던 보통 청년이었다.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 조항에 무늬로만 박혀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 자본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다만 수컷의 동물적 본능만이 날것으로 날 뛸 뿐이다. 남녀유별의 이 땅은 입에 담기도 뭣한 성 범죄 국가로 전락했다. 책을 덮는다. 표지 그림이 눈길을 끈다. 앤디 워홀이 판화 기법으로 반복 출력한 그림 같았다. 음부를 왼손으로, 젖가슴은 오른손으로 가린 나체의 아름다운 여성이 긴 머리를 흩날린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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