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변방의 사색
지은이 : 이계삼
펴낸곳 : 꾸리에 북스
‘체벌, 두발 검사, 복장 검사, 벌점제, 야자, 보충, 일제고사,(96쪽)’ 이 땅의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전근대적 제재는 여전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이 땅의 교육은 ‘교육비 부담의 사적 전가, 교육 주체들 간의 경쟁 조장, 자본에 의한 교육의 종속과 상품화(120쪽)’를 노골적으로 들이대며,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방식, 살림살이를 혼자 힘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독립의 능력, 심미審美적 감수성, 지적 사고와 비판적 지성의 배양(137쪽)’이라는 본연의 학교 교육은 물 건너갔다. 한마디로 이 땅의 교육은 ‘서로 잡아먹기’를 가르치는 ‘식인食人의 교육’으로 악을 가르치고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 지 생각하지 않는 모습 바로 그 자체가 악이다. 이게 악의 진부함’이라고.
2009년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통해 저자를 처음 만났다. 젊은 선생 이계삼은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지도 교사의 권유로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그렇다. 대학진학 성과주의가 작용했으리라. 선생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문과대는 교직을 이수해도 상위 30% 이내에 들어야 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선생에게 무리였다. 나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나도 남들 따라 교직 이수 신청을 했다. 그런데 교직이수 과목이 오히려 펑크가 났다. 하긴 내가 교사 자격증을 땄더라도 선생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의 친구가 사범대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사 모집에 응했다. 그런데 그 시절, 당연하게 기천만원의 사례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촌구석에서 땅 한자리 없이 담배나 팔던 구멍가게로 호구지책을 삼던 친구네 형평상 너무 큰돈이었다. 친구가 선생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고, 지금은 아파트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들 고향이란 게 있어서, 육신의 탯줄을 묻은 고향이건 정신의 고향이건, 고향이 없으면 사람은 외로워서 살 수가 없다.(322쪽)’ 2003년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 밀성고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그의 고향은 칸 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이창동 감독의 '밀양密陽'이었다. 하지만 2012년 젊은 선생은 그마저도 때려 치웠다. 정부와 한전의 강압적인 고압선송전선 강행 공사에 맞서 74세 농민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살했다. 선생은 분신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투쟁의 중심에 섰다. 지금 선생은 마을 대학 ‘감물 생태학습관 교사’다. 자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과 농업을 가르친다. 또한 밀양 지역운동의 공동 물적기반인 ‘두레기금 너른마당’의 운영위원장이다. 쉽게 말해서 이 땅에서 대접받는 직업인 교사를 스스로 팽개치고, 지역운동 활동가로 나선 것이다. 양심적인 독자들은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불편한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변방은 ‘오염된 중심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 진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책은 48개의 꼭지가 6부에 나눠 실렸다. 부제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가 말해주듯 1·2·3부는 교육에 관한 글이고, 4·5·6부는 막돼먹은 세상에 대한 선생의 작심한 발언이다. 김용철, 김진숙, 김예슬, 조세희, 송경동, 허세욱······ 등. 천성산, 새만금, 평택 대추리,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한미 FTA,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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