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대빈창 2013. 3. 14. 05:49

 

 

책이름 :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창비

 

○ ○ ○ 兄께 / 빨리 완쾌하시길 / 좋은 글 쓰시길 / 2005. 1. 31 / 함민복 드림

○ ○ ○ 친구에게 / 고맙습니다 / 2013. 2. 26 / 함민복

 

온전한 시집으로 정확히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이 나왔다. 그랬다. 8년 전 나는 정형외과의 나이롱 환자였다. 십자인대 파열로 3개월째 병실 신세를 지고 있었다.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후 10년 만에 결실을 맺은 따끈따끈한 시집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나는 입원실 침대에 누워 딱딱한 석고 붕대를 두른 왼발을 치켜든 채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빌어 지루한 시간을 이겨냈다. 시집은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수직적 콘크리트 현대문명을 비판했다. 그때 내가 살던 고향 김포는 ‘한강 신도시’라는 미친 개발 바람에 무섭게 휩쓸리고 있었다. 병원을 퇴원하고 얼마 안있어 무슨 인연인 지 나는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홀어머니를 섬에 모신지 벌써 5년이 되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말랑말랑한 갯벌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엊그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두 권이 뭍에서 건너왔다. 한권은 당연히 볼음도의 전만수 형께 전해달라는 시인의 부탁과 함께. 시집에는 3부에 나뉘어 70편의 시와 문학평론가 문혜원의 해설 ‘경험에서 이끌어낸 실존론적 사유’가 실렸다. 시인이 강화도에 터를 잡은 지 20년이 다 되어온다. 시인은 세 번 이사를 했다. 화도 동막리의 보증금 없는 월세 10만원의 양철집과 길상 온수리의 방음이 형편없었던 단칸방 그리고 지금의 길상 장흥리의 낮은 처마의 황토집. 그 삶의 편린들이 시편들을 읽어 나가는 나의 눈을 아프게 찔러왔다.

‘동막리 161번지 양철집’. 버짐 먹은 것처럼 오래 묵은 슬레이트의 페인트가 들고 일어난 집. 밭가에 고욤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옆 개 한 마리가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가 낮선이를 향해 짖어댔다. 시인에게 연락도 않고 무조건 양철집에 들렀다가 나는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하였는가. ‘흔들린다’ 동막 해변에서 시인의 집을 향하다보면 나타나는 모퉁이 집이 익선이 형네다. 마당가에 아름드리 참죽나무가 서있고 그늘아래 탁자에서 우리는 주꾸미, 굴, 밴댕이, 낙지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 탁자의 술자리가 ‘파씨 두서너알’을 낳았을 것이다. 문인들의 석모도 답사 안내로 ‘보문사’를 들러보고 배터로 나온 시인이 손전화를 넣었다. 배터에 관광버스 댈 곳이 마땅치 않다고. 그리고 맞다.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전적으로 산불의 공로다. 오래전 고려산 정상 능선이 큰 불에 휩싸였다. 큰 나무들은 불에 타죽고, 독한 진달래만 살아남았다. 그 진달래가 퍼져 군락을 이루었다. 전업시인은 장가를 가고 초지대교 옆 인삼센터에 ‘당신’과 길상이네 한 평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가난과 불우는 여전히 시인의 뒷통수를 할퀴었다. 바닥으로 곤두박두질 친 경제를 텅 빈 주차장이 말해 주었다. 거기다 이 땅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 지난 1년간 한권 이상의 책을 잡은 사람의 비율이 10명 중 7명에도 못 미쳤다. 다만 갈수록 천민자본이 극악스럽게 활개칠 뿐이다. 그래도 시인은 삶을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한다.

 

뜨겁고 깊고 / 단호하게 /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 현실은 딴전 / 딴전이 있어 /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 늘 딴전이어서 /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 그래도 세계는 /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 단호하고 깊고 / 뜨겁게 /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31쪽 / 전문)